본문 바로가기

체육에 대하여/체육일반

[한선생의 체육잡설] 피구는 초등체육의 적폐다 (1)

  조미료를 팍팍 뿌려서 제목을 뽑아봤다. 몇 달 전부터 피구를 '적폐'로 규정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내가 이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기까지 오랜 고민이 있었다. 초등학교의 체육수업에서 피구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수 많은 초등교사들 때문이다. 내용의 진정성과 무관하게 전형적인 트롤링(Trolling)이 될 것이라는 주변 선생님들의 의견 때문이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분명하게 말하건데, '피구는 적폐'다.

 

  적폐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를 그대로 옮기면 '오랫동안 쌓여 폐단()'이다. 물론 적폐라는 단어가 주는 심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요 근자에 그 말이 어떤이들을 수식하기 위해 사용되었는가? 아마도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의 하나가 '적폐'라고 규정되었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의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피구 수업을 하는 사람들을 국정농단 집단이나 매국 집단과 같은 급으로 폄하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피구수업을 선호하는 선생님들께 분명하게 밝히지만

이 포스팅은 여러분들을 '그네'류와 같은 급으로 모욕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나는 이번 포스팅에서 그 동안 초등학교 체육수업이 가진 문제점을 '적폐', 즉 수십년에 걸쳐 쌓여온 폐단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폐단의 상징적인 종목인 '피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일부 내용들이 초등교사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우리 초등교사들에게 처해진 엄중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리 심한 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중한 상황'이 무슨 맥락인가 궁금하면 앞선 글들을 읽어보시라.

  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67

  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68 

 

  피구는 초등학교 체육교육의 끔찍한 단면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신체활동이다. 교육과정 수립 이래 학교 현장의 체육수업은 정당성의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은 채 누적되어 왔다. 즉, 초등 체육수업에는 오랜 기간에 걸친 적폐가 있으며, 이러한 적폐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초등학교 체육수업에서의 피구다. 그럼에도 그동안 현장 체육수업 전문가들은 동료들에게 피구 수업의 교육적이지 못하다고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그들에게는 피구수업이 나쁘다는 말을 주변 동료에게 하는 것이 대단한 금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즉, '피구 수업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신 체육수업은 나쁜 체육수업이야.'라는 것으로 해석할 사람들이 많을텐데, 이는 피구가 초등학교 체육수업의 단골 소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수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하고 싶지 않다. 잘못된 것은 지적되고 고쳐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피구에서 드러나는 초등학교 체육수업의 적폐들을 하나씩 밝히고자 한다.

 

적폐 1. 교사들은 교육과정과 무관한 수업을 한다.

교육과정을 따르기 위해 피구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2009개정 이전까지 3학년 체육수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에는 성취기준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활동의 예시도 포함된다. 그러나 교사들은 그런 것들을 포함한 수업을 하지 않는다. 교육과정에서 언급한 방법과 평가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꼼꼼히 살펴 읽는다면 교사용지도서를 통해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각종 블로그나 교사 커뮤니티의 자료를 검색하는 경우도 있지만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을 하기보다는 재미있어보이는 것, 교사가 쉽게 이해한 것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즉, 장기적인 목표가 부재한, 그날의 목표만 있는 수업을 한다.

 

적폐 2. 체육수업에서 교사들이 하는 일이 거의 없다.

  피구 수업에서 교사들이 하는 주된 일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서있기', '호루라기 불기', '싸우는 아이들 중재하기'이다. 초등학교 체육수업의 상당부분은 피드백이 뒤따르는 활동 보다는 '하고 말면 그만인' 놀이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또, 교사들은 성장을 관찰하고 지원하보다 성과와 결과를 강조하는데 이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잠재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체육 수업 중 교사가 과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면 아이들의 가치 정향 역시 교사의 가치관에 수렴할텐데 상당수의 초등학생들이 이기고 지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둔다. 결과나 성취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과정에서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수월하다. 과정 속에서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 교수 행동에는 지속적인 관찰과 피드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사에게 더 많은 교육적 행위를 요구한다. 요컨대 초등학교 체육수업에서는 기술적인 것에 대한 효과적인 지도가 부족할 뿐더러, 체육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데에도 미온적이다.

 

적폐 3. 체육수업에서 내용을 설명하는데 인색하다.

  피구 수업은 설명이 필요없다. 이미 아이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는 교사들이 피구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운동장에서 설명을 하는 것은 아주 고된 일이다. 교실 수업과 비교했을 때,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두고 명확한 학습 목표를 주지시키며 정확한 수행 방법을 지도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게다가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운동장에서 설명하는 것을 피할 가능성이 더 높다. 즉,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잘 될지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고 결국 했던 것만 반복해서 수업 소재로 활용하게 된다.

 

적폐 4. 체육수업을 노는 시간으로 인식한다.

  "선생님, 왜 피구 안해요?"

  이것은 체육수업을 성실하게 하는 교사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이다.  피구수업과 같이 한시간 떼우는 수업은 아이들에게 몇가지 체육수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이는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나 수업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 체육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교실 밖에 나가서 체육이 좋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안타깝게도 교사나 학생이나 부모나 체육수업을 노는 시간 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적폐 5. 교사들의 체육수업 레파토리가 한정되어 있다.

  체육수업 시간에 피구를 하는 것은 레파토리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특별한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피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 수의 교사들이 체육수업 시간에 무얼할지 고민을 하다가 피구를 한다.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 내용을 차분하게 읽어보면 매우 다양한 신체활동을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지도서의 가독성이 떨어진다거나 내용이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동장 나가기=피구, 보상으로서의 체육수업=피구는 문제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새로운 것을 지도하는 것에 대한 교사들의 두려움이다.  '이걸 아이들이 재미있게 할까?'라는 걱정으로 가르쳐 마땅한 것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주저할 필요가 없다. 체육수업은 노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폐 6. 체육수업에서 소외가 발생한다.

  피구 수업은 학생 소외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한 명의 학생이 공을 던지고 나머지는 비좁은 공간에서 비명을 지르며 약간의 움직임으로 공을 피할 뿐이다. 피구는 교사들의 정보 수집의 편향성이 잘 드러나는 종목이다. 다수가 즐거워 보이지만 그것은 교사에게 각인된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공을 맞는 것이 두렵거나 불쾌하여 피하는 것이며, 규칙을 달리한다고 해도 결정적인 슈팅은 정해진 학생들이 독점적으로 경험한다. 잘 잡고 잘 던지는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그 나머지 아이들은 들러리로 전락한다. 교사의 세심한 배려가 없다면 여러 주제의 수업에서 학생소외가 나타난다. 피구는 이러한 소외현상을 방임하는 수업의 전형이다.

 

  상당히 날이 서있는 표현을 사용하며 생각을 정리했기에 이 글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선생님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양한 변형피구들을 예로 들며 자신들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피구도 나름대로의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으로서 체육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단기적이고 즉흥적이며 단편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결정할 수는 없다. 물론 분명한 교육적 목적을 갖고 여러 차시에 걸쳐 피구에서 필요한 움직임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지도한다면 좋은 체육수업이 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그런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하건 외부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초등학교 체육수업에서의 피구는 수업 전문성과 책무성의 결여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이다. 물론 피구는 단지 상징적인 것일 뿐이며, 수업 전반에 걸쳐 우리는 의도성 없는 교육을 해 왔고, 나는 그런 점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길 희망하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초등교사들이 전문성을 인정받고 수업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책임있는 체육수업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장에 수 많은 교사들이 체육수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지적이 모든 초등학교 체육수업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적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리지 않고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등학교는 체육수업이 문제야'라고 한 이유는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체육' 하나만을 가르치는 중등교사에 비해 우리 초등교사들의 체육수업 질에 대한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과 간의 통합적인 지도의 관점이나 전과목을 한 명의 교사가 지도하는 것의 교육적 가치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초등교사들의 체육 수업에서 앞서 나열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수업에서 전부를 관찰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일부의 측면을 발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피구가 그 피구는 아니지만 웬지 숙연한 마음이 드는 건...

 

 

  피구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준비 없고 노력 없는 체육수업을 설명하기 위해 피구를 앞세웠는데 피구 자체가 나쁜 신체활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구'에게 모욕적일 수 있음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수업의 주제로 피구를 사용하는 방법과 그 기저에 깔려있는 체육수업에 대한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다양한 변형피구를 소개하며 그것이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스스로의 체육수업에 대한 관점을 재고하길 권한다. 단발성의 피구수업이 정말 좋은 체육수업 컨텐츠라고 생각하면 할 말이 없겠으나...아무리 초등학교 체육수업이 황폐화되었다고 해도 수업 내용으로서 타당한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체육수업을 위해 새롭게 도전하는 용기있는 교사들이 늘어난다면 초등학교 체육수업은 조금씩 변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혹시 피구를 나쁜 체육수업의 전형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 궁금하다면 다음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36

   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37

 

 

#피구는 아무 잘못 없다 #통키야 미안하다

 

 

 

 

-이 게시물의 모든 내용들에 대하여 링크는 허용하지만 자료의 재배포는 금지합니다!

 

-게시글에 대한 공감버튼(♥) 클릭과 댓글달기는 언제든 환영합니다^^

 

 

#체육수업 노하우 #한선생의 체육잡설#Physical Education Hall of Shame#PEHOS#적폐 #나쁜 체육수업#좋은 체육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