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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하여/교육 상념: 잡다한 생각들

[한선생의 체육잡설] 잘못된 만남: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제도에 대하여(2)

앞선 글(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67)에서 이 주장에 나타난 내용 상의 문제점과 그럼에도 이 의견서가 위험한 까닭을 밝히기로 했다.

 

주장에 나타난 내용상의 문제점

 

1. 난상토론장에서 의견을 제시한 전문가들에 대하여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과연 학교체육을 잘 아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 참여한 6381명 가운데 초등교사는 없다.

-체육교사 3%, 스포츠강사 1%로 현장 종사자는 4%에 지나지 않는다.

-난상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현장에 있거나 교육자가 아닌 체육 관련업계 종사자들(교수, 전공 대학원생 및 대학생, 퍼스널 트레이너, 스포츠 관련 회사 임직원, 운동 선수, 운동처방사, 스포츠팀 지도자, 트레이너, 의사나 간호사 등 임상연구자 등)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한국의 초등학교 체육,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체육수업의 미시적인 현상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다. 경험 없는 통찰력이란 기대할 수 없기에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교육 문제를 이러한 구성원들에게 자문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 체육 전문가일지 몰라도 현장 수업에 대해서는 '백면서생'일 뿐이다.

 

2. 한국 초등학교 체육 수업의 특징에 대한 몰이해

  이 문서에는 체육수업에서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러한 운동기능을 갖춘 중등체육교사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체육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체육 수업에서 기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을 뿐더러 그 중요성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체육교육방향의 변화는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며, 사실상 체육교육 선진국들로부터 불어온 바람이다. 피지컬리터러시의 강조가 대표적인 예이다(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46). 뿐만아니라 한국의 초등학교 체육수업에서 한 종목을 가르치는데 할애할 수 있는 차시의 수가 매우 한정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경쟁활동을 예로 들어보겠다. 수업의 중요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여러 종류의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에서는 축구 하나를 익히는데 겨우 10차시도 안되는 분량을 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차시는 기능을 가르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학교 밖에서 학교 수업과 관련된 신체활동을 이어서하는 일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그 축구 10차시가 축구를 배우는 전부인 시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10차시 동안 각 종목의 기능에 초점을 두는 것은 아주 잘못된 수업이다. 어느 문서에서도 명목화하여 강조하는 바는 아니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중 하나가 '초등학교 체육의 핵심은 완벽한 운동 기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의 약화된 형태인 게임이해하고 탐색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은 학교 안팎의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된 외국들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매우 상이한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3. 한국 초등학교에서의 전인교육에 대한 저평가와 새로운 교육흐름인 교과간 통합에 대한 간과

  초등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담임교사 중심의 전인교육에 있다. 담임교사들은 제 2의 부모로 장시간 동안 다양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인지, 정의, 심동적 영역 전반에 걸쳐 관찰하고 학생 내면의 특성들을 밖으로 끌어내는데 힘을 쏟는다. 또, 초등교사들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한 교과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 고르게 이해하고 있으며, 인간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 필요한 각 교과의 가치들을 다양한 교과 수업을 통해 균형있게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한선생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한 교과를 지도하는 중등교사들에 비해 초등교사들이 특정 교과의 가치에 매몰되는 일이 거의 없다. 초등교사들은 어떤 교과를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각 교과가 아이들의 발달에 주는 효과들을 인식하고 그것을 수업을 통해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전인교육을 하기에 전 교과를 가르치는 현재의 초등학교 담임제 교육이 적합하며, 그 교과 가운데 체육도 포함되어야 한다.

  또, 문서의 내용상 간과한 것으로 교과간 통합 수업의 가치를 들 수 있다. 대한민국 초등학교에서의 교과통합의 역사는 아주 길다. 현장에서 즐생, 바생, 슬생으로 불리는 교과에 최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까지 교과 간의 통합은 초등학교에서 익숙하다. 뿐만아니라 최근에는 서로 구별된 교과들을 하나의 테마로 묶어 수업하는 사례가 초등학교에서 아주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교과간 통합 수업에 체육도 빠지지 않는다. 체육은 과학이나 국어와 연계될 수 있고, 아주 흔하게는 음악이나 미술과 연계된다. 한 가지 테마를 통해 각 교과의 (국가수준) 성취기준을 도달하는 것은 실제 생활과 밀접한 내용을 가르칠 것을 강조한 존듀이의 진보적교육 또는 순차적교육의 관점과도 맥을 같이한다. 체육이 체육만 전공을 한 체육전문교사에게 가르쳐지는 순간 초등학교 체육은 교과 통합이라는 거대한 교육적 가치로부터 떨어져 붙일 수 없는 상태로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서가 초등교사들에게 위협적인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의견서의 강한 외적 호소력

  한선생은 의견이 가지는 호소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의견서의 대표 제출자는 접수자인 정책입안자에게 다음과 같이 인식될 수 있다.

 

-체육관련 미국 명문대 교수가 대표 제출자

-대표 제출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한국인

-대표 제출자는 국내문제에 따른 이해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임

-6000명이 넘은 체육전문가들에 의한 의견 수렴

 

  물론, 이에 못지 않게 호소력이 있는 주장을 펼칠 국내 체육학자들과 현장교사들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소매를 걷고 이 문제를 해결할 교육대학교 교수나 학자, 현장연구자들인 교사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이런 정당성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있을까? 이런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의견서의 제출자들은 초등체육교육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2. 대의명분

  이들은 초등학교 체육수업에 큰 문제가 있으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즉,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초등학교 체육수업이 파행으로 이르고 있으며(축구, 피구...그것이 적폐로다), 그것은 체육수업 전문성 부족 탓이라고 보고 있다. 심지어 제출자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정책의 전환으로 얻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뿐만아니라 그 뒤에 스포츠강사들에게 어떠한 지원을 받고 있지도 않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청렴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국내 문제를 해결하고자 방책을 호소하고 있다.

 

3. 국가적 재난인 비정규직 문제와의 관련성

  이미 정부는 젊은 세대의 취업 문제나 경제적 곤란을 '국가적 재난'이라고 밝혔다. 그러한 가운데 초중학교의 스포츠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는 개선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정규교사로서 초등학교 체육수업을 전적으로 담당해야한다는 주장은 탄력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이 의견서가 최종적으로 가게 될 수령인은 조승래의원이 될 것이라고 보여진다.(아직은 안갔다. 이 것은 초안이기때문에. 엉뚱하게 문자폭탄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조승래의원은 스포츠강사들의 어려움에 공감을 하고 있는 사람이며, 전문가들의 의견 내지 지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잠재적으로 이 의견서는 관련 정책입안자들에 의해 요청된 것과 다름이 없다.

 

4. 안타까운 초등학교 체육 교육과정 운영의 현실

  사실 체육수업의 파행적인 운영은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스포츠강사들의 수업이 정답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들 초등학교에 배치된 스포츠강사들이 초등교사들을 대신해 수업을 해왔고(그래서는 안되지만), 그들이 초등학교 체육을 위해 흘린 땀의 가치는 무시하기 힘들다. 일부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스포츠강사가 있음으로 인해 학교체육이 활성화될 수 있다. 초등학교 스포츠강사가 나쁜게 아니라 의견서가 가져올 결과들이 나쁘다는 것이다.

 

 

골드러쉬 또는 콩키스타도르: 우리는 어쩌면 체육수업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외부자들이 봤을 때에는 초등학교는 완벽한 체육의 불모지이며, 그것이 개척 대상이건 문제이건 간에 어떠한 방법이든 체육발전을 위해 조치해야할 대상이다. 그들은 초등교사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중등체육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배치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아메리카대륙 개척시대의 골드러쉬를 방불케 한다.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는 일처럼 체육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어떤 누구든 초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쳐도 탈이 없다는 것이다. 의견서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정책을 밀어붙이거나 지지하는 사람들로 인해 중등자격출신의 체육교사들이 초등학교에 밀려들어와 체육수업을 할 권한을 독차지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지 모른다. 실제로 이러한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이들에게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임용을 준비하는 교육대학교 학생이나 대학원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하는 초등교사들은 그들을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 이상으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스포츠 강사들 각각의 개인들이 기회를 강탈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 탓이어도 말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도 고유한 문명이 있었듯, 초등학교 체육수업에도 나름의 차별성이 있으며 그와 관련하여 초등교사들 사이에서 수업에 대한 많은 고민이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수업권을 잃게 된다면 초등교사들에게는 초등학교에서의 적절한 체육수업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해질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중등체육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초등학교에서 체육수업을 가르치기로 결정되는 날이 온다면 교육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다.

 

아즈텍 문명을 침략하는 콩키스타도르

 

 

  정작 스포츠 강사들이 자신들을 초등학교 체육교사로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나 수업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을 달라는 이야기를 나 개인적으로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계약한 전국 각지의 초등학교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잘 안다. 내 주변에도 아주 탁월한 스포츠강사가 있다. 그러기에 스포츠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 많은 보수와 그들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되기를 항상 바라왔다. 하지만 초등학교 안팎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제도와 초등교사들의 관계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잠깐의 안락함을 위해 수업권을 편법적으로 넘겨버린 현장의 많은 초등교사들과 그런 시스템에 순응한 스포츠강사의 만남은 불합리함과 모순만 빚어내며 이렇게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다.

 

 

하나 더하는 말:  우리 안의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가 중요하다. 그러한 이유는 우리에게 의사결정의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강력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다면 정책을 결정하는데 각개 교사들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건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하고 반드시 표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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