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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하여/교육 상념: 잡다한 생각들

[한선생의 체육잡설] 강원도교육청 '놀이밥' 그리고 학교정책의 민낯

  강원도 교육청이 올 3월부터 '놀이밥 100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취지는 아이들에게 놀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면서 동시에 학교의 돌봄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놀이를 밥처럼' 제공하는데, 1교시 수업 전 30분, 1,2교시 수업이 끝난 뒤 40분, 점심시간에 30분을 더하는 방식으로 100분의 놀이시간을 확보하고, 그로 인해 1,2학년의 하교시간을 3시로 늦춘다는 것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강원도 내 10개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

 

 

  놀이밥 100분은 우리가 마주한 인구 감소와 인격교육의 부재라는 심각한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시간을 매일 100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하교시간을 80분 지연시킴으로써 1,2학년 아이들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건강을 돕고 건전한 놀이 습관을 형성한다거나 부모들의 보육부담을 줄이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인다. 만약 기대하는 만큼 성과를 낸다고 했을 때 꽤 그럴싸해 보이는 시도이다. 더군다나 보육문제는 출산율문제와 연결되며, 이는 더 나아가서 우리의 경제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번 정부가 당면한 몇 가지 주요 국가적 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기획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든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인성교육과 지속되는 낮은 출산율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항상 방법이 문제이다. 변변치 못한 상상력이나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그럴듯한 속임수, 표면적으로 보이는 성과에 대한 성급한 갈증은 언제나 실패한 기획으로 이어진다. 이 기획이 꼭 그런 기획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용의선 상에 올린 것 만으로도 '놀이밥 100분'을 기획한 공무원에게는 지독한 악평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찬사도 많이 들었을 것이며(그리고 그 찬사는 진행형이다) 주요 포털사이트 메인에도 올라갈 정도로 유명세까지 얻었으니 나 한 명의 독설에 서운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이 프로젝트는 분명 성공적인 결과로 마무리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공될 예정으로 시작된 사업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곳에 보도자료가 뿌려졌을까?

 

 

 

  나는 이 건에서 학교정책과 관련된 전형적인 폐단을 떠올린다. 학교정책의 상당수는 제한적인 범위에서 시범 운영을 한 뒤 확대 적용하는 방식을 따른다. 이러한 형식은 당연히 정책의 시행과 관련하여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범 운영이 진정한 실험이 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타당성이나 신뢰성을 확인하려는 시범 운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답은 '잘 된다'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이의제기는 대체로 묵살된다. 학교정책과 관련하여 시범 운영 과정이나 그 결과 좌초되는 경우를 거의 본적이 없다. 이러한 현상은 '놀이밥 100분' 프로젝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생각보다 많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학교정책들'이 쏟아져나온다.

 

 

  이참에 그 동안 학교정책에 대해 고민했었고, 부딪혔었고, 분노했었던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학교정책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지적하겠다(꼭 '놀이밥 100분'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1. 엮는다. 자꾸 엮는다.

 

  많은 학교 정책들은 정치나 시류에 엮여 만들어진다. 물론 교육과정이나 입시와 같은 큰 틀의 교육 정책들의 경우, 파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도교육청의 좀더 작은 수준의 학교 정책은 그보다 큰 흐름에 엮여져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교육기관과 관련된 정책임에도 교육의 논리가 아닌 정치의 논리나 경제의 논리에 의해 기획되는 정책들이 많다. 교육의 논리가 참으로 허약한 것은 정치의 논리(결국은 표)나 경제의 논리(결국은 돈)에 비하여 그 결과가 가시적이지도, 즉각적이지도 않기에 교육의 논리에 의한 학교 정책은 생각이 다른 이들의 동의를 구할만한 힘이 없다.

 

   '놀이밥 100분' 프로젝트도 결국 기존에 언론을 통해 이슈화되었던 보육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를 낳고 살기에 나쁜 나라'라는 인식이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된 것이 오래되었지만 이번 정부들어 주요 국정과제로 부상한 것이 사실이다. 아래 기사는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보도이다.

 

"유시민 청원 '초등학교 빈 교실 어린이집 활용' 합의"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562791&plink=ORI&cooper=DAUM

 

방과후학교 의무화 논란에 저출산위·교육부 '발빼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90144&CMPT_CD=P0001&utm_campaign=daum_news&utm_source=daum&utm_medium=daumnews

 

  이러한 논의의 요점은 보육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며, 공교롭게도 보육의 책임을 교육기관에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누가 일을 하는지에 대한 것은 차치하고, 학교정책과 관련된 많은 기관들은 여러 사업들을 정치나 언론에 의해 이슈화된 주제에 엮으려는 경향이 있다. 성급하게 엮다보니 여러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거나,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에 배치되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 '놀이밥 100분'의 기획대로 저학년이 운동장을 사용하면 다른 학년 학생들은 체육수업을 할 공간을 잃게 된다. 100분 중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한 70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간과 겹쳐지는 1교시, 3교시, 5교시 체육수업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까닭은 놀이밥을 적용하지 않는 학년이 위에 제시한 시정표와 다른 시정표를 운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6교시까지의 수업을 예로 들었을 때 절반의 시간은 체육수업시간으로 선택될 수 없다. 즉, 1,2학년 교육과정 때문에 다른 학년 학생들의 신체활동 기회가 박탈될 소지가 매우 크다. 또다른 공간상의 문제는 그 많은 아이들이 동시에 놀 공간이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더도 말고 한 학년 당 4학급 규모의 학교인 경우 1,2학년 합쳐 8개 학급의 아이들이 운동장을 나눠써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냐는 이야기다. 공간이 좁았을 때 아이들의 안전은 보장받기 힘들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기획자가 의도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으니라... 고작 '공간'의 측면에서 생각해봐도 이런 문제가 드러난다. 아주 작은 학교에서나 가능하지, 중간 규모 이상의 학교에서는 어렵다.

 

 

2. 결과는 정해져 있다. (계획서의 '기대효과' = 결과보고서의 '운영결과')

 

  학교 정책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경우 '시범적으로 운영'해보겠다고 했지만 '이미 할 계획'이었다. 기관의 시범 운영은 될지 안될지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될 것을 확인하는 수준이고 많이 양보하더라도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다. 기획안의 '기대효과'는 보고서의 '운영결과'가 된다. 심각한 저항이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한 그렇게 진행된다. 그러나 시범 학교의 업무담당자들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난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는 않는다. '알만한 사람끼리 속아주는 게 예의 아닌가요?' 더군다나 감시가 부족한 곳에서는 엉터리 현장에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다반사이다.  사외이사와 같은 개념의 비판적인 외부 전문가들이 위촉되지 않는 학교 현장에서 교육에 대한 안목을 갖춘 유일한 감시자는 교사뿐이다. 그러나 비판 기능은 거의 작동하지 않고 보고서에는 좋은 점만 쓰여진다. 결국 이러한 시스템에서 검증도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현장에 일괄로 적용된다.

 

답정너... 왜 물어볼까?  (출처:한국경제매거진)

 

  검증도 되지 않는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학교에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변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적용이 어려운 상황인데 강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초등학교 전교생의 학교스포츠클럽 참가'와 같은 허무맹랑한 시도를 보라! 피해는 고스란히 학교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 몫이 된다.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로 학생들에게 가야 할 교사의 주의와 정성이 흩어지고 학생들은 효과가 불분명한 프로그램에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어도 기획자는 책임지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것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맹점 중에 하나가 '효과가 겉으로 빠르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교육의 이러한 특성 덕에 잘못된 기획이 사실은 엉터리 였음은, 그리고 아이들이 손해봤음은 완전히 가려진다. 오히려 그런 엉성한 판을 짠 사람이 유무형의 보상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3. 현장의 의견 따위는 듣지 않는다.

 

  기획 과정에서 분명 문제점이 존재할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회의실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기획 추진의 걸림돌이 될 요소들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장에 묻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 현장의 의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니와 일부 현장 교사들에게 묻는다고 해도 '기관 친화적' 혹은 '행정 친화적'인 현장인원들에게 묻는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4. 쇠파리떼가 많다'에서 계속). 그들은 대체로 현장의 교사들을 게으르고 무책임한 니힐리스트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에는 여론을 등에 업고 현장의 의견을 묵살하기도 한다. 여론의 힘을 빌리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교사와 관련된 정책에 대한 기사문의 댓글을 보면 쉽게 감이 온다.

 

  요즘 교사들이 하는 자조섞인 농담 중 하나가 '표를 얻고 싶은자, 교사를 까라!'라는 것이다. 그만큼 교사와 학교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팽배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현장을 따돌리거나 소외시키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다. 교사가 교육의 주체이면서도 의사결정에서 소외되는 까닭은 정책의 결정자들이 교사들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처지에 있고 대체로 다툼을 싫어하는 집단적 특징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평균적인' 교사는 동반자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며 자신들의 영도를 따라야 하는 부족한 존재이다. 그들이 이러한 관점을 떨쳐내지 않는한 현장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태는 반복될 것이다.

 

 

4. 쇠파리떼가 많다.

 

  좀 세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잘못된 학교 정책이 추진될 때 시류에 영합하여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정녕 옳다고 믿고 일을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교육적으로 옳고 그른지에 대해 덮어두고 일단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 달려드는 자들,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정책 결정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달콤한 말만 들려주는 자들이 있는데 나는 기꺼이 그들을 '쇠파리떼'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은 현장을 왜곡하여 설명하는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현장이 겪을 혼란이나 교육 본질의 훼손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공부깨나 한 자들의 곡학아세나 이론은 없으면서 욕심만 많은 자들의 견강부회가 그들이 이름이나 자기만족감을 높여줄지언정 그들의 언행 속에는 실제로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학교들의 처지나 교육의 발전 따위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 이런 사람들이 넘치는 덕분에 엉성한 학교정책들이 지지받고, 정당화되며, 처음부터 잘못된 기획이었음에도 적용하는 과정에서 현장 교사들의 겪는 어려움이나 실천의 실패들은 그 교사들의 무능 탓으로 돌려진다.

 

이 파리 말고...다른 파리 (출처: 익스피디아)

 

 

  이 '놀이밥 100분'으로 엉뚱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굴까? 아마도 놀이를 전문으로 하는 교사들, 그리고 소수의 교사 아닌 자들의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시류를 타 자신의 컨텐츠를 판매하고 강단에 서서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익을 취할 것이다. 만약에 이를 지지하고 기회를 얻는 자 가운데 누군가가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이미 다른이들에 의해 완성된 무대이고 나는 거기에 올라서는 것 뿐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가 바로 쇠파리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어쨌든 한다는 것은 다 좋다는 식의 무한 긍정주의는 결코 교육 발전의 거름이 될 수 없다.

 

 

  '놀이밥 100분'이 추구하는 가치는 아주 바람직하다.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기에 이 시도가 기존의 학교정책의 추진의 양상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며, 보이지 않는 손실은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손해배상은 누구에게도 청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교사나 학부모들은 이런 정책을 경계의 눈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의 폐단은 학교의 전시행정에서 드러나는 전형적인 문제점들이다. 학교정책이 전시 효과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집중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나는 '놀이밥 100분'에 대해 시범학교의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살피길, 그리고 1년 뒤에는 프로젝트의 결과를 바탕으로 현실적이며 교육적으로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소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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