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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

한선생의 체육 경험 내러티브

체육을 못하는 아이

 

  저는 체육을 잘 못합니다. 고등학교 때 줄곧 체력장에서 1등급을 받기도 했지만 공 같은 도구를 잘 다루지 못할 뿐더러 갈대처럼 가는 골격 덕에 작은 충격에도 쉽게 다쳤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때 축구를 하면 숫자가 모자라 채워지는 '수비수' 역할을 했었고 중학교 때에는 축구에 끼지도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가끔 친구들 틈에 끼어서 족구나 농구를 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들러리'의 역할일 뿐이었습니다.

 

 

멸치 1, 그게 나였다.

 

  반면에 저의 형은 운동을 참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공을 잘 다루었고 특히 무도스포츠와 체조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형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태권도 동아리를 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우슈를 수련했는데 산타 종목의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형이 무술을 즐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무술을 수련하던 형의 친구들과 후배들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나약했던 자신과 정반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태권도를 만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대에 합격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무술과 관련된 동아리가 있는지 찾아보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학내에는 검도부와 태권도부가 있었는데 맨손으로 하는 무술에 관심이 있었기에 태권도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동경하던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동아리의 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들어간 지 한달만에 집행부가 줄줄이 탈퇴를 했고 몇 안되던 새내기들도 기웃대가 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신입은 저 하나뿐이었고 동아리에 들어간지 단 한 학기만에 훈련부장이 되었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회원은 선배들이었고 모두 유단자였지만 저는 흰띠였습니다. 전임 훈련부장을 하던 고학번 선배가 저를 지목했기 때문에 그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던거죠.

 

한선생을 사람답게 만들어준 태권도 동아리에서 선후배들과 한 컷

 

  태권도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제일 큰 어려움은 당연히 태권도에 대한 경험부족이었습니다. 태권도를 스무살 때 처음 배우는데 훈련까지, 더군다나 유단자 선배들 훈련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매우 경험이 풍부하고 경력도 매우 훌륭하신 태권도 스승님께서 동이리를 돌봐주셨던 것입니다. 위대한 스승이 계셨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짧은 시간에 태권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리더쉽에 대한 경험부족이었습니다. 앞장서서 무언가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무너져가는 동아리를 책임지게 되었는데 2학년부터는 훈련부장과 회장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했습니다. 2학년때부터 동아리를 이끌어갈 친구를 얻었고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덕분에 태권도 동아리는 학내 체육동아리 중 가장 큰 동아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해심이 부족해서 후배들을 함부로 대했고 결국 동아리 회장과 훈련부장을 동시에 내려 놓게 되었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결말이었습니다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망해가는 동아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이벤트보다 좋은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지도 방법 면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였습니다. 태권도를 가르치고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한 경험은 체육교사로서 저에게 아주 중요한 경험을 주었습니다.

 

 

무에타이에 빠지다

 

  그러던 중 무에타이라는 무술을 접하게 됩니다. 당시 무에타이는 지금 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무술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무에타이가 가장 강한 무술이라고 알려지기 시작했었습니다. 태권도에 심취했던 저는 '세면 얼마나 세다고'하는 생각으로 무에타이를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연구 차원에서 세 달 정도 할 계획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몇 달 하려던 것이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맙니다. 데뷔전을 치르고,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대회를 나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지도자 교육과 심판 교육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꾸준 수련하지는 못했지만 기간으로는 10여년을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체육관을 차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무에타이는 약 10여년간 한선생의 정체성이었다. 지금은? ...

 

  그런데 무에타이는 저에게 만만한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태권도와 달리 무에타이는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겨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약하고 겁이 많은 제가 거친 무에타이를 소화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에타이 체육관을 찾아오는 일반적으로 건장한 사람들이 수련하는 보통의 훈련 방법으로는 제가 성장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만의 훈련 방법을 고민해야 했고 스스로 정한 훈련 방법으로 저를 가르쳐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학교 태권도 동아리에서의 실험적이었던 지도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체육관에서도 저만의 방법들이 더해진 트레이닝 기술로 다른 수련생들을 도왔고 곧 '한사범'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직접 무에타이를 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다른 초심자나 선수들을 트레이닝하는 것에 큰 소질을 보였습니다.

  태권도와 무에타이를 수련했고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제가 고등학교 시절 동경했던 선배들의 모습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등학생 시절엔 그들의 거친 모습을 동경했던 것이고 지금의 나는 그렇게 거친 사람은 아닙니다만 전문가는 못되어도 충분히 준전문가라고 불릴 만큼의 실력과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태권도와 무에타이라는 두 가지 경험은 한동안 교육의 현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었고, 체육을 전공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체육교육을 전공하는 나

 

  태권도와 무에타이를 수련하면서 가장 큰 시련은 결핍이었습니다. 더딘 학습속도와 허약한 몸과 나약한 정신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교육적 시도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 잘 하게 될 것인가를 제 몸을 대상으로 온 갖 방법을 동원해 실험을 했습니다. 운동 학습이 빨라 쉽게 배우는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운동을 못하거나 운동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섬세해지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운동을 못한다는 것이 단점일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는 그것을 체육 교육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강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체육교육의 관심사도 체육을 지도하기 어려워하는 사람, 체육 배우기를 힘들어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제 모습이고 제 모습이 바로 그들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운동은 못합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에는 관심이 많고 자신감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