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bout Me

[한선생의 체육잡설] Why so serious?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감사하게도 이곳에 제가 남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주로 체육이나 교육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서 들어오시지만, 일부는 제 블로그의 존재를 알고 찾아 오시기도 합니다. 사실, 이곳에는 즐겨찾기로 등록해서 올만큼 매력적인 글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찾아오시는 분들 대부분은 제가 정리했던 교수학습모형이나 교수스타일에 대한 글을 찾아온 예비교사나 대학원생들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연구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극소수의 분들(대체로 이미 한상모라는 사람을 알고 방문해주시는 분들)과 현장에서 여러 고민을 하다가 검색 중에 우연히 들러주시는 현장 교사분들이 계시지요.

이미 교사나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 중에 제가 남긴 생각의 흔적들로부터 자신만의 통찰을 체험하시는 경우도 아주 조금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대부분은 언짢음이나 불편함을 겪는 것 같습니다. 저의 추측으로, 그러한 언짢음이나 불편함은 제가 여기에 남긴 체육과 교육 현상에 대한 해석들 대부분이 일반적으로 현장 교사들에게 통용되는 것들과 반대되거나 다른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에서, 저는 '왜 다르게 이야기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면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며, 제가 쓴 글들에 대해서도 조금 너그럽게 수용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글을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현장의 실천가이자 초등체육교육학 박사인 재야 연구자입니다. '재야'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말은 저의 주된 연구가 현장에서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이나 대학에서 연구하는 사람들과 유사하게 추상적이고 학술적인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은 아마 저를 체육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많은 분께서 기대하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좀 더 넓은 관점에서 '교육'을 연구하고 공부합니다. 비록 학위는 체육관련이지만 말이지요.

지금까지 저는 몇 권의 교과서와 개인 서적, 두 개의 학위논문과 열 편이 조금 넘는 학술논문을 썼습니다. 별로 많은 것들은 아닙니다만, 그런 산출물들을 생산해내는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의아하겠습니다만, 체육은 물론이거니돠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저는 제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인지과학이나 철학, 교육과정학을 공부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쏟아 왔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으나, 그랬습니다. 왜냐고요? 제 관심사에는 초등교사와 초등교육의 전문성을 정당화하는 일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써온 거의 대부분의 산출물들이 '체육'에 대한 것이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체육 교과라는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초등교육의 전문성, 초등교사의 성장, 초등교육의 정당화 가능성에 대한 것들입니다. 저는 초등교사라는 제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등교사의 전문성을 설명하는 일관된 논리 내지 원리를 세워나가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교육에 대해 제 스스로의 선입견을 지우고 영(零)으로부터 새롭게 이야기하는 과정입니다.

초등교사의 입장에서 교육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것, 특히 체육 교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기존의 체육교육 연구자나 실천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주장을 아주 함축해서 이야기하자면, 초등학교에서 체육 교과 이외의 나머지 체육 사업을 날려버리고 교과 교육으로서 체육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강체력교실이든, 중간놀이시간이든, 학교스포츠클럽이든, 학생건강체력평가든, 놀이체육이든 부가적인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은 학교체육이라는 분야에서 방귀 좀 뀌는 사람들이나 기존의 논의에 기대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거북한 주장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교사가 교사답게 체육 교과를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교사들을 끊임없이 바쁘게 하는 모든 정치적 결정들을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초등교사는 체육 교과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일부 급진적인 분들은 초등교육 전공자가 아닌, 체육 전공자들로 '초등체육교사'를 따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논리를 따른다면 초등교사는 어느 교과도 제대로 가르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끝내는 모든 자리를 내주고 초등학교 밖으로 쫓겨나가야할 것입니다. 불행히도 초등교사와 초등교육의 전문성에 대한 외부의 시각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초등교육이 개방되는 날이 온다면 그 시발점은 초등체육일 것입니다. 제가 보기로 현장의 초등체육은 교육과정학적으로 거의 타당성 없는 신념에 기초한 내용과 방법들이 횡행하며, 수업 자체도 제대로 실천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교과서 내용조차 제대로 따르지 않는 현실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초등체육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성립하지 못한채로는 체육학의 기능과 지식으로 무장한 체육 전공자들이 초등체육에 대한 개방 요구를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매사 심각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초등교육 공동체가 중등교육과 대별되는 초등교육이나 초등체육의 정체성을 세우는데 거의 실패했으며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떠도는 미신들은 좋은 교육에 대한 착시를 일으켜 우리 공동체가 우리의 전문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스포츠와 놀이, 체육 교과를 혼동하는 것이나 신체활동의 양적 증대를 중시하는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학교스포츠클럽, 놀이교육-놀이체육-중간놀이, PAPS 등). 이것들은 우리를 바쁘게 할 뿐, 자신의 교육 실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교육전문가로 만들어주는데 방해가 됩니다. 제가 보기에 초등학교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도입된 무분별한 제도는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초등교사들에게 전문성을 갖추었다는 착각을 심어주며 초등교사들에게 초등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일관된 관점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초등교사는 교과에 대해 고민하고, 교육과정을 실천하면서 성장합니다. 그러한 경지는 학교 생활 동안 아이들을 바쁘게 할 일을 구안하거나 기분을 즐겁게 하는 방법 따위에 골몰하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개인적 필요에 의해 '초등체육교사'라는 말을 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초등체육교사라는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체육 수업을 하는 초등교사가 있을 뿐입니다. 초등교사는 공교육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교과를 가르치고 인성을 형성하는 사람입니다. 초등교육은 공교육의 일환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체육이 여러 공교육의 구성 요소 중 특별한 지위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초등교사가 체육을 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교과와 같게 대해야겠지요. 물론, 다른 교과를 중요하게 실천하는 것에 비하면 한참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긴 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체육 교과가 정상적으로 가르쳐지지 않는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심각하냐구요? 초등교사와 초등교육의 처지가 심각하기 때문에 심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