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가 되면 체육수업과 관련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일에 참견(지원)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 밀도가 매우 높아서 정작 일을 끝내고 난 뒤 남은 짧은 시간은 방전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부생들 프로젝트 보고서 피드백 요청이나 국책 사업 관련 연구 진행을 위한 토의와 의견서, 교내 선생님들에 대한 수업 피드백, 개인 연구에 대한 조언, 지역내 교육지원청의 사업으로 진행되는 수업 코칭이 쉼 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9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피드백 지옥에 허덕이고 있네요. 그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기분전환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만... 이곳에 종종 들르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여기에 쓰는 글 자체가 좀 헤비합니다. 기분전환도 되지만, 정신적으로 소진되기도 하는지라ㅎㅎㅎ 가뭄에 콩나듯 제게 체육수업 코칭을 받는 현직 선생님들과, 매학기마다 이해중심게임수업을 이해하지 못해 프로젝트 보고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학부생(사실상 예비 후배 선생님들)을 위해 글을 써 봅니다.
이해중심게임수업이 세상에 빛을 본 것이 1982년인데, 글을 쓰는 시점을 기둔으로 40년이 넘었다. 체육교과 최초의 교수학습모형이자, 다른 수 많은 교과가 교수학습모형에서 단원설계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한참 전에 만들어진 선구적인 이론이기에, 이해중심게임수업은 체육교육 전공자들에게는 전통이자 자부심이다. 그런데, 40년 된 이론인 것치고, 현장과 대학을 막론하고 이 모형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는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양성기관의 문제인데, 교대와 사대의 커리큘럼에 체육교육 함량이 적고(아이러니하게도, 체육교육과인데도 전체 요목 중에 체육교육은 20퍼센트가 채안된다!), 이 중요한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는 교강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둘째는 현장교사의 학문에 대한 무관심과 아집의 문제로, 초중등을 막론하고 이해중심게임수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한 채, 자기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뭔가 학문적으로 지적하면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며 성을 내는...이게 뭔 말인지 독자들도 알 것이다.).
예전에, 학교체육축전에서 발표를 할 일이 있었다. 재야의 이론가라 이미 찌들어 사는 상황에서 굳이 에너지를 더 소진하고 싶지 않았지만, 학회에서의 요구로 참석하게 되었다. 이론이지만 쓸모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다가 선택한 주제가 이해중심게임수업이었다. 발표를 잘 하고 질의응답시간에, 멀찍이 나이깨나 드신 중등체육선생님께서 팔짱을 낀채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해중심게임수업이 게임하고 배우고 다시 게임하는 거 아닙니까? 전략적인 내용 말고 건강이나 도전에서도 다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경쟁적인 구조가 있는 모든 활동에 이해중심게임수업을 쓸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정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오래 수업을 해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처음부터 이론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제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채 체육교과와 게임수업에 대한 오개념을 갖고 교직생활을 할 후배교사들을 위함이다(물론, 이 글의 내용은 중등교사들도 쓸모가 있을 것이다).
이해중심게임수업의 핵심은 게임에 있다. 게임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의 생각으로, 게임이라하면 농구나 축구, 테니스, 골프 따위를 들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은 전술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고도의 기능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단순히 기능이 우수해도 전술적 판단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잘 해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속성이 게임을 육상의 여러 종목이나 수영, 역도 등의 장르와 구분해준다. 이해중심게임수업의 이론가들은 여러 전술적 스포츠 가운데 영역형 게임(축구, 농구 등), 필드형 게임(야구, 크리켓 등), 네트형 게임(탁구, 배구 등), 표적형 게임(당구, 컬링 등)을 대표적인 게임 장르로 범주화했다. 다른 수많은 전술적 게임들, 가령 술래잡기에 가까운 카바디나 수많은 격투스포츠 역시 새로운 범주로 분류될 자격을 갖추고 있으나, 이해중심게임수업의 전통적 분류는 그 네 가지만을 다루고 있다.
이해중심게임수업에서는 그 게임을 가르치기 위해 작은 단위의 게임을 활용한다. 그것이 바로 게임 형식(game forms)이다. 게임 형식은 특정 게임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중요한 전술적 상황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게 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게임 형식은 (1) 원형의 게임이 가진 특징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2) 특정한 전술적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적 목표에 맞게 변형되었으며, (3) 원형 게임보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점차 복잡한 형태를 투입함으로써 다 배우고 났을 때 원형 게임에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가령, 축구를 위한 게임 형식에는 공을 빼앗는 영역형 게임의 속성이 포함되어야 하며, 특정한 조건에서 양 팀이 점수를 얻어 경쟁하는 구조가 포함되어 있지만, 정식축구보다 훨씬 간단한 형태를 띄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이해중심게임수업을 적용한 단원에서는 모든 과제를 게임형식으로 제시한다(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차시의 과제를 게임 형식으로 제시하는 것은 매우 교조적이다).
차시에 적용할 게임형식이 개발되거나 선정되면, 차시 수업에서는 이 과제를 게임-연습-게임의 형식으로 활용한다. 보통의 경우, (1) 게임(형식)을 하는 규칙과 안전사항만 알려준 채 학생들에게 게임에 참여하게 한다. 당연히 전술적 이해가 부재하거나 같은 팀 구성원들 사이에 전술적 감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게임이 잘 안풀리게 된다. 이런 불만을 남긴채 (2) 연습기회를 갖는데, 이 연습단계에서는 게임이 잘 풀리기 위해 필요한 전술이나 기술, 기능 등에 대해 토의하고(혹은 교사가 유도발견형의 질문으로 답을 도출하고), 필요한 경우 본래 과제보다 더 단순한 형태의 과제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연습하게 할 수 있다. 이때 단순 기능 연습은 지양한다. 그 다음으로 (3) 다시 원래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학생들은 전술적인 이해를 토대로 다시 게임을 수행하며 자신이 연습 단계에서 학습한 전술의 중요성을 느끼고, 그 전술을 실제적 상황에 적용(전이)해 보며 자기화한다.
그런데, 잘못된 이해중심게임수업, 다시 말해 어떤 교사가 이해중심게임수업을 하는데 삐걱대는 이유는 게임 형식을 선정하거나 개발하는 데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즉,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 시종일관 직접교수모형에 가까운 수업을 해 놓고 자신이 이해중심게임수업을 했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아래 과제를 보자.
위의 과제는 공을 드리블하고 후프 안에서 슛을 하는 과제로, 릴레이 형식으로 두 팀을 경쟁하게 한다. 승패가 있다는 점에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게임은 이해중심게임수업에서 말하는 게임(게임 형식)이 아니다. 상대의 역동성에 대응하는 전술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농구가 속한 영역형 게임의 경우 하나의 공을 두고 서로 빼앗는 것이 핵심적인 역동성이다). 농구에 대한 게임 형식이라면 공을 몰고 가능 것에 대한 상대의 방해가 포함되어야 하는데, 위의 과제는 단순히 공을 정확히 조작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과제에서의 릴레이는 승패를 결정함으로써 학생들을 자극하는 촉매로 사용되었으나, 이것은 이해중심게임수업의 게임이 아니다. 기능중심수업 혹은 직접교수모형의 과제로는 무난하지만, 이해중심게임수업의 과제로는 낙제점이다. 이러한 과제를 넣는다면 이 수업은 '가짜 이해중심게임수업'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제를 적절한 게임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래 과제를 보자.
위의 과제는 코너킥이라는 빈번한 전술적 상황을 하나의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서로 공을 빼앗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역형 게임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양팀의 승리조건(수비는 공을 밖으로 보내기, 공격은 슈팅으로 득점하기)이 제시되어 있어서 경쟁적이며 승패가 결정된다. 또한, 역할을 수비와 공격으로 정확히 나눔으로써 수비와 공격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정식 축구에 비해 복잡성 면에서 훨씬 단순하다. 이러한 과제를 통해 게임-연습-게임으로 수업을 운영하고, 매 차시의 과제에 이러한 게임 형식을 선정/개발하면 이러한 수업과 단원 설계는 '진짜 이해중심게임수업'이다.
진짜 이해중심게임수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첫째, 과제를 개발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미 개발된 것이 있다면 활용할 수 있겠지만 학생 수준의 다양성에 맞는 과제가 충분히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지 않다. 둘째, 기능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종목의 경우, 기능 중심의 과제를 반복적으로 활용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두번째 이유는 순수한 형태의 이해중심게임수업을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능 연습을 어느정도 포함하면서 중반부 이후로 기능 연습과 전술 연습이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단순한 게임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물론, 이러한 하이브리드 교수학습모형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이해중심게임수업 기반의 단원설계라면 적어도 차시의 과반에 게임 형식을 과제로 포함해야 할 것이다(간당간당하게 51% 이상 넣으라는 것이 아니라 2/3정도는 게임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부생 여러분.).
개인적으로 가장 골머리를 앓는 것이 학부생의 지도이다. 많은 학부생이 1-2학년 시기에 이해중심게임수업이 좋다는 인식을 갖고 3학년이 되지만, 정작 이해중심게임수업이 뭔지 잘 모른 상태에서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잘 알려줘도 늘 게임 형식을 헷갈려 한다. 딱하게도, 이들은 제대로 된 게임 형식을 학창시절에 경험해본 적이 없다. 교사대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전문성 저 밑바닥에는 학창시절 경험이 있다. 학생으로서 좋은 수업을 받아보지 못한 교사가 좋은 수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 과거를 부정하는 수준의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쁜 수업에 물든 교사가 좋은 수업을 하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은채, 대다수의 학부생들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자꾸 검증되지 않은 유튜브 자료를 보고 보고서에 넣으려고 한다. 학부생들 지도에서는 그걸 바로잡는데 나의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다. 유튜버를 하는 선생님들이 자료를 잘 좀 만들어줬으면 하는 당부, 그리고 학부생들이 강의 내용을 좀 더 진지하게 듣고 기존 교과서와 지도서를 신뢰하고 사용하라는 당부를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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