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역에 발령 받아 수석교사로 지낸지 한 학기가 되었습니다. 수석교사의 역할과 책임이 선명하지 않은채 수석의 일을 시작했고, 여전히 진행중에 있는 우여곡절 속에서 수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어렴풋이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7월 12일인 수석교사의 날을 앞두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학기의 생활을 떠올리며 반성하면서 제가 경험한 수석교사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합니다.
학교 안팎의 많은 분이 "수석교사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수석교사의 역할이 뭔지 정말 궁금해 하는 분들도 계시고, 수석교사가 쓸모 없다는 생각에 책무성 요구(책무성, accountability: 납세자가 공직자에게 일 한 것이 무엇인지 증명할 것을 요청할 때 응해야 하는 의무) 차원에서 궁금해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근데 저처럼 처음 수석을 하는 교사들도 수석교사가 내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하긴 합니다. 확실한 메뉴얼이 없기 때문이지요. 메뉴얼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관리자-수석 갈등이나 교사-수석 갈등이 발생하기에, 저처럼 처음 수석을 하는 사람들이나 수석교사를 꿈꾸는 선생님들도 궁금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펴본 여러 선배님들과 동기 수석님들을 멀찍이에서 볼 때, 수석교사의 방향성은 1000명의 수석이 있다면 수석교사 역할의 방향성은 1000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석교사 역할의 대원칙은 초 · 중등교육법 20조 3항의 설명처럼 "수석교사는 교사의 교수·연구 활동을 지원하며, 학생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해석하면, 수석교사는 자기 자신도 학생을 가르치고 교사들의 전문성을 지원합니다. 여기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수업이나 생활지도, 동아리 등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즉, 수석교사는 실무적 감각을 유지하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사들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안내하고, 소개하며 필요한 경우 가르치는 것을 본업으로 합니다. 여기까지는 법률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느냐의 문제에 대한 제 의견이고요...
그러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수석교사의 역할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수석교사들이 트렌디한 방법론의 전도사가 되길 바라는 듯 합니다. 에듀테크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교과서(AI ·DT), 개념기반교육과정, IB교육과정 등 정부의 관심사나 정책을 잘 이해하고, 그러한 정책의 전도사 역할을 수행하길 바라는 것이지요. 주변의 많은 수석님이 이러한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엄청나게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밤 · 낮과 온 ·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연수에 참가하시며 구하기도 힘든 문건들을 찾아 열독하고 본인의 수업에 적용하십니다. 그리고 배움을 나누기 위해 지역이나 학교에서 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수석교사가 역할을 하는 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르게 지냈습니다. 적당히 공부를 하지만 트렌드에 거리를 두고 제 연구를 많이 하며 지냈습니다. 정부의 기대가 법률상 어긋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러한 기대가 실제로 학교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지역에서 완장을 차고 선생님들과 부딪히며 정책을 지원한게 5년차 때부터였고 그 이후로도 교내외의 선생님들과 좋고 나쁘게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개정교육과정때 1차 연구에 참여하며 몇 문장 거들었으며, 교육부 주관의 평가자료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일단, 선생님들은 각자의 세계가 강해 수석교사가 안내하고 가르친다고 해서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교육과정 개발해보고 평가자료 만들어보니 트렌디한 교육과정개발 이론들을 토대로 단원을 설계하고 평가지 만드는 것은 교사 몇명이 섣불리 덤빌 일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 일들은 박사들이 간주관적으로 지식을 도출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두 가지 경험에서 볼 때, 트렌디한 이론을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은 가성비가 많이 떨어져보입니다. 그것을 수석교사의 핵심적인 역할을 정한다면, 수석교사는 대부분의 교사에게 외면된 채 그 이론에 관심이 많은 연구회 소속 교사나 지방과 중앙의 선도교사들에게만 필요한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교사가 동료와 다른 방법론을 추구하면서 원칙을 고수하는 경우 집단에서 배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 조직내에서 이상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요. 이건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직접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다른 선생님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획일적으로 수평적인 교직 문화에서, 행정적 권한이 없는 리더가 주변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물론, 행정적으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결과는 대체로 서류작업으로 그친 채 각자 가던 길 그대로 가는... 하나마나인 방향으로 흘러가지요.) 수석교사의 처지가 딱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급기관으로부터 트렌디하길 요구받지만 실상 만나고 설득해야 하는 교사들은 그 트렌디함을 금새 지나가 버릴 유행 정도로 생각하니까요.
이미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 채로 수석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했느냐...요약을 하자면...
'공부 안 하는 군기가 잔뜩 빠진 신규 수석교사였다.'
'생각하는게 교감교장하고 다를 바 없는 수석교사였다.'
'커피 내리고 수다떠는 것 말고 하는게 없는 수석교사였다.'
그랬습니다. 그래도 저는 참 당당하네요. 왜 당당했는지는 다음 글을 통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수석교사 한선생] 제멋대로 수석교사 생활하기 (tistory.com)
'수석교사 한선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석교사 한선생] 하인즈 딜레마를 활용한 도덕 수업 (0) | 2024.08.18 |
---|---|
[수석교사 한선생] 제멋대로 수석교사 생활하기 (0) | 2024.07.11 |
[수석교사 한선생] 수업 나눔 또는 수업사후협의회, 이렇게 했어요 (1) | 2024.06.06 |
[수석교사 한선생] 수석교사의 컨설팅에 대한 단상 (0) | 2024.05.28 |
[수석교사 한선생] 체육 연수(지속가능한 수업을 위한) (0) | 2024.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