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석교사 한선생입니다. 2024학년도 스승의 날을 앞두고 기사 하나가 눈에 띕니다. 한겨레 신문에 난 『교대 합격선 추락, 우려할 필요 없다』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교직과 무관한 한 시민의 글로 소개 되었습니다. 글의 요지는 교사가 될 사람의 열정이 중요하지, 성적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교대 합격선 추락, 우려할 필요 없다 [왜냐면] (hani.co.kr)
교대 합격선 추락, 우려할 필요 없다 [왜냐면]
이경수 | 강화도 주민 교대 합격선이 크게 낮아졌다는 기사가 이목을 끕니다. ‘6등급도 합격’이라는 자극적인 제목도 보입니다. 교사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담긴 듯합니다. 저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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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성취에 비인지적 능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사회과학분야의 수많은 연구결과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글의 내용에 교사에 대한 삐뚤어진 사회적 인식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을 그리 이뻐하지 않는데, 가르치는 일이 별로 내키지 않는데, 안정적인 직장이라서, 정년이 보장돼서, 방학이 있어서, 부모님이 권해서 시작한 교직은 ‘내가 선생이나 하려고 그 고생하며 공부했나’ 자괴감을 부르고, 자괴감은 삶의 의욕을 갉아먹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교사에게 배우는 아이들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1등급만 받았던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쉬운 걸 왜 모르지?’ 학습 부진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6등급 받았던 선생님은 성적 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한 공감이 가능할 겁니다. 해결 방법 역시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수능 1등급 교사들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어디에서 나왔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하 등급의 성적을 받아 교대에 입학한 교대생들은 모두 아이를 사랑하고, 부모의 영향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교대를 선택할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또, 성적 1등급을 받은 교사는 학습 부진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교사들의 전문성이 그저 개인적인 경험이고, 교사들은 직업적 전문성 없이 상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일까요?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 직업적 열망이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가는 반면에 1등급 성적의 교사들에 대한 삐딱한 인식에는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음을 익히 알기에, 기사문으로 이런 글이 게재된 것이 영 씁쓸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학교 밖의 시민들보다는 더 많은 사례를 관찰한 결과일 것입니다. 제가 겪어온 시기별 저경력 교사와 제 강의를 수강한 몇 해 동안의 교대생들을 통해 느낀 그대로일 것입니다.
첫째, 교대 입학이 어려웠던 시기의 저경력 교사들이 직업적 프라이드가 강했다. 또한 조직 적응도 우수하였으며 인내심 또한 높았다. 반면, 최근 입직하는 교사들은 같은 자긍심, 적응력의 개인별 편차가 매우 컸다. 일부 학교에서는 관리자가 신규교사들의 낮은 직업윤리 를 감당하지 못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둘째, 교대 입학 성적이 점차 하향되어가는 시기에 강의를 해 본 결과, 학부생들의 학습 태도와 기본 예절, 이론에 대한 이해도의 편차는 더욱 커졌다. 물론, 교대 입학 평균 성적의 하향에도 우수한 성과를 보인 학부생들은 늘 있었으나, 양극화는 심해졌다. 특히, 입결과 강의 수강 태도의 상관 관계는 교대의 교강사들이 더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저는 1등급이 아니어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성적 1등급은 단지 좋은 재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그간 초등교사들 중의 1등급에 해당하는 세대의 다수는 재능이 있어서 1등급 성적을 거두는 1% 인재가 아니라 성실하게 내신과 수능 점수를 관리했던 2~4%의 모범생들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성과는 재능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럽습니다. 요령과 노력의 수준이니까요. 사회에서 주어진 표면적이거나 암묵적인 규칙들을 성실하게 익히고 수행한 결과로 입직한 이들이 '초등교사를 직업적으로 선택했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저는 수능 9등급제가 처음으로 생긴 해에 수능을 보았고, 1등급을 받고 교대에 입학했습니다. 상위 3퍼센트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집안 형편을 고려해서 교대를 갔습니다. 원래 사범대를 가고 싶었지만 한 번에 임용되지 못했을 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교대에 입학했습니다. 교대는 부모님이 권한 진로도 아니었고 오로지 제 선택이었죠. 19년의 짧은 인생에서 계획했던 삶의 1순위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초등교육을 사랑하고,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진로를 정리하고 수석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초등교사로 입직한 수 많은 선생님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세대의 교사들보다 직업윤리가 낮을까요? 저는 현재의 30~40대의 교사들의 직업 윤리가 이전 세대에 비해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뇌물이나 폭력과 거리가 먼 1등급 세대의 교사들이 단지 1등급이었기 때문에(사실 일부 초등교육과나 교대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1등급 턱걸이를 했던 노력파들이) 은연 중에 스승과 거리가 먼 직업적 교사(교육공무원)로 폄하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6등급의 성적으로 교대에 입학한 교대생은 자신이 꿈꾸는 초등교사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면 됩니다. 앞으로도 1등급 이하의 성적으로 교대에 입학한 모든 예비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체고 출신들도 특별히 교대에 입학시킨 역사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는 체고의 선수 출신으로 교대에 입학한 뒤 후배들의 진심어린 존경을 받으며 학교장을 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 글은 합격선 하락과 반비례해 인성이 좋은 학생들이 교대에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초등교사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경험적으로 교대 합격선의 추락은 우려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는 것이지만, 교대에서 배우는 내용이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며, 사회의 표면적, 암묵적 규칙을 성실하게 수행하려는 태도는 교대에서 충분히 배우기 어려운 것입니다. 마치 1등급 성적의 교사들이 가진 문제가 그 이하의 성적을 거둔 교사 지망생들에게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듯한 기대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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