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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하여/교육 고찰: 개념과 이론

[체화인지와 교육] 체화(emboidiment)에 대하여(하)


이 글은 지난 글에 이어 체화의 주요 개념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최근 체육학에서 이야기하는 체현과는 조금 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체육계에서의 체현론은 주로 메를로 퐁티의 철학과 밀접하게 연결된 반면, 제가 이야기하는 체화는 메를로 퐁티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와 유사한 학문적 영향을 받은 인지과학분야의 담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여기에서는 다섯 가지 체화 인지 담론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1. 체화된 인지 이론


"어떠한 복잡한 개념, 예컨대 자본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 조차 그것과 관련된 매우 감각적인 경험에 기초해 형성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접하면서 공정이 주는 편안함을, 다른이에게는 경쟁이 주는 잔혹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이 자본주의에 대한 인상과 반응을 좌우한다."

체화 인지에 관심을 갖는 대다수의 연구자는 인간의 인지가 신체화되어 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고가 감각운동적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러한 관점을 대표하는 학자는 레이코프존슨이다. 인지언어학자인 이들은 인간의 마음이 감각운동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체화된 인지 이론에 따르면 앎이란 개체가 경험한 감각과 행동을 통해 환경과 자신의 관계를 몸속에 신경망의 형태로 새겨놓은 것이고, 인간의 마음은 몸에서 우러나오는 ‘경향성’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앎은 신체적 경험을 통해 형성되며, 이것은 명료한 개념이 아닌 은유의 형태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은유는 무엇인가? 은유는 그 의미가 중의적이며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확장적인 것이다.

문학에서나 사용할 법한 은유가 앎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은유는 도처에서 사용된다. 교육 역시 은유로서 다루어졌는데, 대표적인 은유로 과학과 예술이 있다. 교육을 과학으로 보았을 때와 예술로 보았을 때 우리는 수업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교육이 과학이라면 우리는 정확히 계산된 절차로 학생들이 계획된 학습 결과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반면 교육이 예술이라면 수업은 다소 즉흥적으로 결정되는 창의적인 과정으로 여겨질 것이다.

2. 확장된 인지 이론


"우리는 우리의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구를 활용한다. 계산의 정확성과 속도를 위해 주판에서 계산기, 컴퓨터를 활용하며, 망각을 극복하기 위해 수첩이나 녹음기, 영상촬영장치를 활용하기도 한다."

일부의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의 인지를 몸 밖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지적 행동은 주변적인 요소들과 결합하여 조작하고 개발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컨대 우리는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해 중요한 정보를 메모하거나 휴대 전화에 저장한다. 또한, 앞서 예시하였듯, 펜과 종이로 글을 쓰는 것보다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글을 쓰며 더 많은 상상력을 발현해내기도 한다. 이렇게 두뇌 외적인 것들도 인지과정의 부분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인간 인지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 확장된 인지 이론의 입장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인지과정에 적합한 정보들을 저장하고 있는 외부 장치로 볼 수도 있다.

3. 구현된 인지 이론


"우리는 도구를 사용하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인지구조를 형성한다. 테니스 라켓을 들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어떠한 의미도 없지만, 그러한 움직임은 라켓을 들고 공을 마주하는 순간 공을 다루는 데 매우 기능적인 움직임이 된다."

인간의 인지는 환경에 의존하여 구현되기도 한다. 인간은 인지적인 과제를 수행할 때 자신 이외의 환경이나 인공물 등의 구조에 매우 강하게 의존하며, 예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환경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 관점은 확장된 인지 이론과 거의 같아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확장된 인지 이론이 우리의 몸 밖에서(예컨대 전자계산기와 같은 외부의 인공물)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의 인지 과정과 같다면 그것 또한 인지로 받아들인다. 반면 구현된 인지 이론은 인간의 지적 행위가 환경에 의존하긴 하지만 이것은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작용이라고 본다.

오래된 발명품 중 하나인 주판은 수를 빠르게 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주판알을 조작하는 행위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기억하고 연산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준다. 이러한 장면은 구현된 인지를 잘 반영한다. 여기에서 인지의 주체는 주판을 활용하는 사람이고 그의 인지는 주판을 조작하여 계산을 하는 것이다. 주판을 활용면 암산할 때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복잡한 계산을 할 때 주판으로 연산하는 인지 방식은 주판이 없이는 쉽게 구현되지 않는다. 즉, 이 방식의 인지는 주판과 인간이 함께 조응할 때 원활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구현된 인지 이론은 우리의 행동 중 상당 부분이 우리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구나 환경과 같은 특수한 조건과 함께 작동하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4. 분산된 인지 이론


"지적 행위는 개인의 수준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집단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개미 군집이나 여러 직원들이 협업하는 기업을 보라. 각자의 역할은 단순하거나 협소하지며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도 작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합(合)으로서의 힘은 그보다 훨씬 강력하며 창의적이다."

한편, 인지 과정은 집단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조직 전체의 인지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체들에 분산되어 있다. 그리고 각 개체 사이의 상호작용은 집단적인 인지로 작용하여 그 조직을 움직인다.

개미 군집의 사례는 분산된 인지 이론을 잘 설명한다. 개미의 지능은 인간의 지능에 비해 현저히 낮지만, 개미의 군집은 생존을 위해 알을 낳거나 먹이를 사냥하거나 다른 곤충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는 등 지적이고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의 모습을 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 개미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왕개미가 개미 군집의 지도자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왕개미는 단지 알을 낳는 역할만 할 뿐이다. 군집의 결정은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개체들의 작은 행동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에게도 나타난다. 예컨대 국가의 구성원들은 수많은 역할을 나누어 각자의 일을 인지적으로 수행한다. 국가 전체를 하나의 인지체계라고 보았을 때 국가는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지적 행위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국가라는 것은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지 않는다. 국가는 정신도 없으며 육체를 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행동이 국가를 마치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사회의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모든 것을 완전히 제어하고 통제하지 않더라도 사회를 이루는 각 영역에서 각자가 최선을 다함으로써 사회가 원만하게 돌아간다.

5. 행화적 인지 이론


"우리는 내적인 특징을 가진 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그럼으로써 가장 환경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적응한다."

인지생물학자들은 인지를 환경에 적응하는 진화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행화적 인지 이론에 따르면 생명체의 지적 행동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행화적 인지 이론에서는 인간의 감각을 적극적인 세계의 탐사 행위로 본다. 이것은 곧 자극의 수용이 표상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정보가 개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식과 환경적 맥락에 의존하여 적극적으로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행화적 인지 이론은 생명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구조를 변천하는 것으로 본다. 개체는 내부의 요소들의 자체적인 작용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구조를 변형시킨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앎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이론의 선구자인 마뚜라나바렐라는 아는 것과 하는 것 그리고 존재하는 것이 서로 얽혀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행위하고 경험(학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식하고 행하는 매 순간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삶 자체가 학습이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s://sapienlabs.org

 

#. 창발


체화 인지의 이론들은 인간의 행동을 환경과 역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창발(emergence)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앎이나 능력을 설명하는 통속적인 관점과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누군가의 실수나 성공에 대해 순전히 개인의 역량과 관련짓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종종 이 역량이 개인에게 저장되어 있으며, 환경적인 맥락과 전혀 무관하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체화 인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역량은 환경과 개체 사이에서 드러나는 모종의 합작품이다. 요컨대 유능함은 개체가 가진 것을 적절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맥락에서 개체와 환경이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체화 인지의 관점에서 앎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고정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앎이란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각자가 체험을 통해 은유의 형태로 형성하는 행동 경향성에 가깝다. 앎의 적합성은 특정한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닥친 상황에 적합한지 아닌지에 의해 평가된다. 그런 점에서 체화 인지에서 탁월한 앎이란 자신이 가진 경험을 환경과 적절히 결합함으로써 상황에 맞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단지 정보를 많이 알거나 단순한 기능을 능숙하게 해내는 것을 중시해왔던 오랜 전통과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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