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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하여/교육 고찰: 개념과 이론

[체화인지와 교육]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떠나보내며(프롤로그)

 

    『전이와 역량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
    글의 순서 (제목을 선택하면 해당 문서로 이동합니다.)

        0.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떠나보내며(프롤로그)
        1. 조립과 분해라는 적절하지 않은 은유
        2. 체화인지의 관점에서 되돌아본 역량 교육 신드롬
        3. 전이를 위한 변명

    각 포스팅의 내용이 길지 않습니다. 전체 내용을 읽길 추천합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아직 입에 달라붙지 않지만 이미 여러 해 전부터 2022년에 교육과정이 개정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지인을 통해 들은바로는, 1~2월 사이에 각 교과교육과정도 각 교과별로 시안이 마무리되어야 한다는데, 이번 정권 내에서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무리지으려는 모양새입니다. 이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떠나보낼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교과서를 처음으로 집필한 것도, 그리고 교과 교육과정과  총론, 그리고 더 나아가 교육과정학의 입장에서 교육과정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것도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중심교육과정, 그리고 이해중심교육과정을 기초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으로 몇 조각으로 나뉜 글을 통해 이해중심교육과정-역량중심교육과정에 대한 견해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아, 이 시리즈의 글은 도입부인 이 글을 제외하고는 제가 일전에 쓴 <체화된 앎과 교육>이라는 책의 내용을 조금 수정한 것들을 다룰 것입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중심교육과정으로 알려졌으나, 교육과정의 근간이 되는 또 다른 원리는 이해중심교육과정이다. 짧지 않은 교사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거의 모든 학부모나 교사는 한 교육과정이 어떠한 원리로 조직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로 학부모들은 그러한 변화가 대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교사들은 교과 내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나 구체적으로 어떤 행정적 변화가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 그런 이유로 상급기관에서 아무리 교육적인 고심 끝에 교육과정을 설계한들 그러한 교육과정을 설계한 결과가 드라마틱한 성과로 드러나기는 쉽지 않다.

 

  역량중심교육과정이나 이해중심교육과정에서는 '역량'과 '영속적인 이해'를 중시한다. 여기에서 역량이란 다양한 현상과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총체로, 일반적으로는 내용이나 정보, 사실 등에 비교되는 다양한 종류의 고등사고능력(자기관리, 지식정보처리, 의사소통, 창의적 사고 등)을 가리킨다. 영속적 이해란 학습자가 구체적인 사실이나 정보를 망각한 이후에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핵심아이디어를 의미하는데, 교육학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브루너의 '지식의 구조'와 유사한 개념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강조한 역량이나 이해라는 개념은 모두 교육을 통한 '폭발적인 전이'를 강조한다. 이것은 지엽적인 지식 암기나 기능의 반복 훈련으로는 실제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유능한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문제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지식 암기와 기능 훈련을 통해 얻은 단순한 능력은 복잡한 실제 상황에 응용되기 어려워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곧 여러 가지 문제 각각에 대응하는 여러 가지 '지식이나 기능'을 가르치는 대신, 여러 가지 문제(심지어는 과거나 현재에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전이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포함한다. 유대 격언 중 하나인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다. 특히 암기 위주의 입시 교육에 찌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더 그럴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12년의 공교육이 과연 쓸모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보통의 시민이건, 교육 종사자건, 정책 입안자건 공교육을 받는 기간 동안의 불쾌하고 비효율적인 기억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의 사람은 그 12년이 쓸모없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기업(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인듯 하다(역량 교육의 시작은 직업세계에서 당장 쓸 수 있도록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기업의 요구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핵심적인 것을 가르치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수업에서 실제로 써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육과정적 아이디어는 그 동안 행해왔던 교육과정 관점들을 한 순간에 낡아빠진 것, 당장 끝내야할 적폐로 만들어버렸다.

 

  교육은 쓸모있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교육이 쓸모있는가?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유능함'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유능함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유능함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물음에 대해 확신에 찬 답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이것을 쉽게 이야기한다면 참 멍청한 사람일 것이다). 이 문제는 인식론의 주제와 매우 비슷한 구조를 가지는데, 잘 살펴보면 이 인식론의 주제는 교육의 주제와 거의 같은 구조를 가진다.

 

 

  유능함이란 무엇인가?

    [교육]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의 목표/내용)

    [인식론] 앎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유능해질 수 있는가?

    [교육] 어떻게 교육할 수 있는가? (교수학습방법)

    [인식론] 어떻게 앎에 이를 수 있는가?

 

  유능함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교육] 교육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교육의 평가)

    [인식론]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왠 뜬금없이 인식론이냐고 하겠으나, 교육과정의 문제에서 인식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일관성과 체계성 있게 새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이야기에서 인식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체계적이다. 만약 어떤 교육과정이 급격하게 변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전의 인식론과 다른 인식론을 채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과정 개정은 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목표와 내용, 방법, 평가의 변화를 수반한다. 이 말은 인식론적 이해가 없이는 교육과정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러한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면 교육과정이 개정되었다 한들 그 교육과정의 본연이 드러나는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교사가 교육과정이 개정되면 그저 내용이나 행정적 절차에 관심을 갖는 것이나, 변화를 그저 서류상의 변화 정도로 치부하며 이전의 교육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이해가 부족하거나 그것에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어떤 인식론을 토대로 만들어졌는가? 앞서 '이해'와 '역량', ,'전이'가 이 교육과정의 키워드임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의 경험(또는 지식, 능력)을 이원적으로 분류한다.

 

지식, 기능, 정보 (지식, 기능,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
내용
단편적이고 임시적인 것
부차적인 것
방법
영속적인 것
핵심적인 것

 

  급진적인 '역량주의자'들은 이러한 인식론적 아이디어를 토대로 교과보다는 역량을 가르쳐야 하며, 기존의 전통적인 교과 교육을 대신하여 각각의 역량을 마치 교과처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면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체육, 음악, 미술을 대신하여 정보처리능력, 의사소통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이 하나의 각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발상에는 지식, 기능,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을 따로 가르칠 수 있으며, 이것만 있다면 어떠한 문제에든 적당히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인식론적으로 보았을 때, 지식/기능/정보의 활용능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판단으로는 각 지식이나 기능, 정보의 종류와 무관하게 활용 능력을 기를 수 있다거나, 각 분야의 특성과 무관하게 활용 능력이 같다고 볼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체육이나 미술에서의 문제해결능력과 수학에서의 문제해결능력이 같다거나, 문제해결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체육, 미술, 수학에서의 문제 상황에서 동일하게 유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보겠다. 만약에 '분류하기'라는 능력이 있다고 하자. 이러한 능력은 동식물을 분류할 때도 쓰이지만 도형을 분류할 때, 음식을 분류할 때, 미술 작품을 분류할 때도 쓰인다. 겉보기에 분류하기라는 기능은 모두 어떤 기준에 따라 각각의 것을 묶는다는 점에서 그것이 동식물이든, 도형이든, 음식이든, 미술이든 같아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그것들을 분류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다. 기하학적 이해가 있다면 도형을 분류할 수 있으나, 생물학적인 지식이나 맛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면 생물이나 음식, 미술 작품에 대한 분류하기는 불가능하다. 즉, 분류하기라는 능력은 언어적으로 설명할 때에는 하나로 보이지만, 그러한 능력이 각 영역(수학, 생물학, 미식, 예술 등)에서 발휘되는 방식이나 그것을 학습하는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지식(경험)을 내용(지식, 기능, 정보)과 방법(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인식론은 한계가 분명하다(물론, 역량주의자들은 이를 부정하지만, 여전히 여러 연구자들은 역량주의자들의 해명에 대해 부족함을 느낀다.).

 

  서설이 길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어설프게 인문학 강좌를 보는 것보다는 교육에 대한 인문학적 사색의 흔적들이 교사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오만한 판단 하에 이해, 역량, 전이에 대한 생각을 소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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