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에 대하여/교육 고찰: 개념과 이론

경험의 원리: 계속성과 상호작용

 

 '점프볼'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운동 시설 중 하나이다. 위에 매달린 공을 손바닥으로 치도록 만든 장치인데,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차례대로 매달려 있다. 점프볼을 제대로 치려면 자신이 점프하여 도달할 수 있는 공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점프볼의 경험을 1) 높게 뛴다. 2) 손바닥으로 공을 세게 타격한다. 3) 성공에 대한 성취감을 느낀다. 라고 한다면, 치려는 사람에게 맞는 높이의 공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너무 낮으면 하체의 근력을 충분히 사용해 뛰지 못하고, 쉬워서 성취감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너무 높으면 근육의 수축을 느끼며 뛰어 오를 수 있지만, 타격도 못하고 성취감을 느끼기도 어려울 것이다. 즉, 높이가 적절하지 않으면 점프볼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체험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장면은 교육에 있어서 학생의 수준과 수업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학생의 성장을 극대화 하려면 과제의 복잡성이나 난도가 학생의 수준보다 지나쳐서도 안 되고, 부족해서도 안된다. 방향이나 초점 면에서도, 학생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계속성과 상호작용이라는 교육적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듀이는 경험의 원리로 계속성과 상호작용을 꼽았다. 그가 교육의 목적을 경험의 지속적인 증진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때, 경험의 두 원리인 계속성과 상호작용은 교육의 원리라고 해석해도 무방할듯 싶다. 그렇다면 계속성과 상호작용은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듀이가 남긴 『경험과 교육』에서 두 개념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소개할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예외 없이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해서 모든 경험을 진정으로 똑같이 교육적인 것으로 본다는 뜻은 아니다. 경험과 교육을 곧바로 상호 동일한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험은 비교육적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험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후의 경험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비교육적인 것이다. 어떠한 경험은 새로움에 대하여 무감각한 상태를 초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경험은 새로움에 대한 감수성과 감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며, 그럼으로써 앞으로 좀더 풍부한 경험을 갖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약하게 된다.
『경험과 교육 중에서』

 

  듀이는 교육을 인간의 경험이 성장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모든 경험이 교육적일 수 없다고 보았다. 어떤 경험을 하였는데, 그것이 더 경험을 발전시키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에는 비교육적 경험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어떤 수업을 듣고 나서 그 내용에 혐오감이나 불쾌함을 느껴 더 이상 그것을 공부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면, 비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다른 것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데 학습자에게 충분한 자극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어떤 성장이 일어나지 않을텐데, 이것은 무교육적 경험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성장한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 열강을 하더라도,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그 내용이 그다지 와닿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을 무교육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의 계속성이라는 원리는 습관, 생물학적으로 해석되는 습관이라는 현상에 근거하고 있다. 습관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특징은 우리가 어떠한 경험을 하고 경험의 결과를 겪게 된다고 할 때, 그 경험은 예외 없이 우리들을 변화시키기 마련이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후속 되는 경험의 특질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경험을 하고 난 뒤에 그에 후속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할 때, 우리는 이전 경험의 영향으로 인하여 다소간 다른 사람으로 변모되어 후속 되는 경험에 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습관-이전 경험을 근거로 새 사태에 반응하며 사태의 특수성에 맞도록 이전 경험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반응의 양식, 한 개인의 됨됨이를 형성하는 지적, 정서적 행동과 태도와 신념의 체계-을 이해할 때, 그것은 특수한 사례의 하나로 무엇인가를 행하는 다소간 고정된 방식으로서의 습관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일상적인 습관의 개념보다는 분명히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정서적이며 지적인 태도의 형성을 포함하며,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삶의 조건들에 대한 기본적인 감수성과 그러한 조건들을 대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방식들을 포함한다.
『경험과 교육 중에서』

 

  경험의 계속성이란 우리의 경험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속된 과정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를 변하게 하는 특정한 사건(교육) 이전과 이후로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은 곧 교육을 통한 변화가 어느 계기를 통해 없던 것이 생기는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현재는 과거의 끊임없는 사건과 반응이 누적된 결과이며, 현재의 경험은 미래의 변화에 어떠한 형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며 세계와 만나 새롭게 배우고 성장하기도 하지만 생물학적인 노화과정으로 쇠퇴하게 된다. 인간의 성장은 이러한 계속적인 흐름 안에 있는 것이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갑작스럽게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상호작용이라는 말은 경험의 두 요소, 즉 객관적인 조건과 내적인 조건들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에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다. 정상적인 경험은 예외 없이 이 두 가지 조건들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객관적인 조건들과 내적인 조적들이 합쳐지거나 상호작용함으로써 우리가 상황이라고 부르는 것이 형성된다. 전통적인 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의 경험을 통제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외적인 조건을 강조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떠한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될지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인 내적인 측면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경험과 교육 중에서』

 

 경험의 상호작용이란 학습자의 학습이 학습자가 인식한 외부의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학습자의 내부적인 상태(내적 조건: 심리적, 신체적 상태, 이전 경험 등)와 학습 환경(객관적 조건: 교육의 내용이나 방법 등)과 맞닿은 만큼 학습이 이루어진다거나,  두 조건이 맞지 않으면 적절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약 경험을 내적 상태와 외적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보지 않는다면 학습자에게 맞지 않는 교육 내용과 방법이 적용됨으로써, 의도한 것과 무관하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게 될 것이다.

 

경험의 두 원리인 계속성의 원리와 상호작용의 원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두 원리는 상호 견제하면서 동시에 하나로 묶여 있다. 말하자면 이들은 경험의 종적인 측면과 횡적인 측면에 해당한다. 다양한 상황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나 계속성의 원리로 인하여 이전의 상황으로부터 이후의 상황으로 무엇인가가 전해진다. 한 개인이 하나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넘어갈 때, 그의 세계와 환경은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
『경험과 교육 중에서』

 

  계속성과 상호작용을 고려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학습자 개인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표준화된 내용과 방법을 적용하는데 익숙하다. 여기에는 모든 학생들이 유사한 집단일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교육의 실패는 이러한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을 각각 다른 작은 우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떤 교육적 시도가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려면 각각 다른 사정을 가지고 있는 그 작은 우주들에게 적절한 내용과 방법으로 교육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간혹 교육이 무교육이나 비교육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그러한 원리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부 아이들이 역사 수업에서 하품을 하고, 수학이나 물리를 포기하고, 체육 시간을 끔찍하게 여기는 것을 멈추려면, 두 원리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글을 마무리하며-

  체육 수업에서 전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축구가 과연 3-4학년 학생들에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보통의 초등학교 중학년 학생들에게 공을 몰고, 높게 뜬 공을 적절히 다루는데 필요한 운동 감각이나 신체적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어 수업에서 제재로 실린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과연 6학년 학생들에게 공감되는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평균적인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겨 허덕여 본 적이 있어서 주인공의 경험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성과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 두 개념이 가진 의미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동과 성인을 가르치며 느끼는 것은 이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과 이 원리를 이 교육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내가 사용하는 교과서나 교재도 문제지만, 기존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교육도 문제이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이 게시물의 모든 내용들에 대하여 링크는 허용하지만 자료의 재배포는 금지합니다.
-게시글에 대한 공감버튼() 클릭과 댓글달기는 언제든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