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순서 (제목을 선택하면 해당 문서로 이동합니다.) 0. 정상 체육 서설: 건강과 유희를 넘어서 1. 놀이체육비판(1):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를 시작하며 2. 놀이체육비판(2):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上) 3. 놀이체육비판(3):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中) 4. 놀이체육비판(4):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下) 5. 놀이체육비판(5): 비판의 근본적인 이유(上) 6. 놀이체육비판(6): 비판의 근본적인 이유(下) (현재 글) |
이 포스팅은 지난 포스팅 <놀이체육비판(5): 비판의 근본적인 이유(상)>에 이어진 글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 제가 놀이체육을 비판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초등교사와 초등교육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점과 연결시켰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전문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면면으로 든 첫 번째 지적은 교사가 수업 중에 다루는 활동이 일회성 활동으로 끝난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번째 지적은 개별 교사가 교과 교육에 숙련될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한 가지 지적을 더 한 뒤에 꼭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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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을 수 있는 세 번째는 교육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이다.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육 내용은 교육과정에서 다루어야 할 본질적인 것(그것이 성취 기준이건, 교육 목표이건)을 가르치는 것에 완전한 초점을 두어야 한다. 공교육은 교사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합의된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것이며, 학생들이 수업에서 무얼 학습하든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길 기대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제시할 교육 내용은 교육과정을 가르칠 수 있는 것에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며, 교사의 역할은 단지 주제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지향하는 것을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학습의 방향을 안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교육 내용은 교육과정과 관련성이 높은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 사용하는 교육 내용들을 살펴보면 학생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에 대한 초점이 불분명한 것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자료들은 사소하게는 학습지에서부터 수업을 위한 프로그램(슬라이드 자료나 차시 또는 단원의 과제)까지 다양한 데, 가르치려는 차시나 단원이 전제하는 중요한 부분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 내용은 단순히 교과서의 해당 페이지의 지식이나 기능을 언급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또한 교육과정의 의도와 무관한 엉뚱한 활동에 초점을 두어서도 안 된다.
좋은 교육 내용은 어떤 지식이나 기능과 연결된 문제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식과 기능에 대한 문제해결력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교육과정'에 명시된 것과 높은 수준의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 엄밀한 기준에서 보았을 때 상당수의 자료화된 교육 내용은 교육과정의 표피적인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 교사는 그러한 교육 내용을 사용하지 않거나, 상당 부분 수정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집한 자료를 과감하게 변형하는 교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그 자료가 유명세를 떨치는 교사나 공동체가 개발한 것이라고 했을 때 비판은 더욱 무디어 진다. 틀림없는 사실은 초등교육에 있어서 일부 동종업자들에 대한 일종의 우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체육 수업에서 더 눈에 띄게 드러난다. 다수의 교육 내용들은 우리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신체활동 문화의 맥락을 다양하게 다루기 보다 재미있게 땀을 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재미있는 놀이를 개발하고 각종 체력 요소의 발달과 연결한다거나, 인성 요소의 함양과 결부시키는 것이다. 이런 작업의 결과물들은 교육과정의 측면에서 별로 정당하지 않지만 거의 비판받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날선 비판을 꺼리는 초등교사 공동체의 경향성 탓도 있겠으나 체육교과에 대한 명확한 관점의 부재, 그리고 유명세와 지적 권위에 대한 혼동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떤 정보가 책이나 연수와 같은 경로를 통해 전파된다고 해서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다.
검증과 판별의 능력부족이나 기피는 전문성의 부재와 떼어서 보기 힘들 것이다. 꽤 오래전부터 교육과정 문해력이라는 개념이 교육계를 기웃대고 있다. 이 개념은 교육과정을 해석하고 재생산하는 교사의 일을 문맹-해득의 프레임으로 보고, 그러한 업무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된 교사를 계몽의 대상으로 둔다. 개인적으로 이 용어에 대해 심정적으로는 썩 내키지 않지만, 상당히 납득이 된다. 교사를 문맹에 비유한다는 점에서 언짢음을 주지만, 실상 다수의 교사가 교육 내용을 검증하고 판별하는데 서툰 지금의 상황은 문해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체육은 그런 현상을 대표하고 있다. 각종 책이나 연수, 동영상 플랫폼, 밴드 등으로 공유되는 문제적 재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면 초등 교사의 체육 교육 소양이 미해득 수준이라는 공격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나의 놀이체육에 대한 비판은 특수한 관점을 반영한다. 놀이체육이 실제 보통의 초등교사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가 내가 처한 현실이다. 오랜 면담과 관찰의 결과로, 긴급한 때울거리나 소일거리를 위한 주제- 그것이 보통의 초등교사가 체감하는 놀이체육이다. 초등학교 체육이 비전문적 상태를 면치 못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체육 계열의 전공자들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교육은 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성스러운 과업'이 아니라 개인과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가 걸린 '밥그릇'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놀이체육의 옹호자와 개발자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놀이체육은 그와 관련된 컨텐츠의 확대와 함께 체육교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키고, 그러한 인식이 공동체를 잠식함에 따라 초등교육의 설자리를 조금씩 좁아지게 만들고 있다.
놀이가 체육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놀이가 신체활동 문화라는 거대한 맥락을 교육적으로 다루지 못한다면 체육이 될 수 없으리라. 현재의 놀이체육이 정상체육이 되려면 다양한 신체활동 문화를 골고루 다루어야 하며,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주제면에서 영역형 게임, 표적형 게임, 네트형 게임, 필드형 게임을 비롯해 다양한 투기 활동과 체조, 무용 등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며, 효과면에서 40분을 체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제의 핵심을 충분히 이해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신체활동 문화로 그러한 이해가 전이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놀이체육은 초등교육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놀이체육의 방향성은 공공의 광장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갈 길은 분명하다. 놀이체육이 공교육의 일반적인 속성을 갖추길 포기한다면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며, 공교육의 속성을 갖추고자 한다면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이상을 위해 현재의 모습으로부터 변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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