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순서 (제목을 선택하면 해당 문서로 이동합니다.) 0. 정상 체육 서설: 건강과 유희를 넘어서 1. 놀이체육비판(1):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를 시작하며 2. 놀이체육비판(2):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上) 3. 놀이체육비판(3):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中) 4. 놀이체육비판(4):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下) 5. 놀이체육비판(5): 비판의 근본적인 이유(上) (현재 글) 6. 놀이체육비판(6): 비판의 근본적인 이유(下) |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고난을 겪고 있어서 한 동안 포스팅을 하지 못하였다. 이전의 글에 이어서 드문드문 드는 생각으로 놀이체육비판의 다섯 번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상당수의 교사가 놀이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가운데 놀이 체육을 비판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호감을 얻기 어려운 일임에도 굳이 욕먹을 각오로 글을 쓰는 데에는 아주 뚜렷한 이유가 있다. 놀이체육이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나는 현시점에서 많은 교사가 공유하고 있는 놀이체육이라는 개념이 대내적으로 초등교육의 전문성을 약화하고 대외적으로 초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급락시킬 것이라고 예상한다. 어렴풋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것이며, 그리고 그것이 상당히 과장된 판단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내가 놀이체육을 비판하는 까닭은 초등교육이 처한 고질적인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그 문제는 비전문성에 대한 것이다. 초등교육이 비전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활동'이 '활동'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행해지는 활동 중심의 교육은 뭔가 학생들을 분주하게 만들지만, 그 안에서 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의미있는 탐색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하여 체육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이러한 지적은 마치 현장의 체육수업을 콕 짚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껴진다.
교사라면 학생들을 단순히 바쁘게 만드는 것과 어떤 목표에 집중하게 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체육이 교과라면 수업에서 활용하는 과제는 단순히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로 삼는 움직임에 집중하여 그것을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질적 변화를 일으켜야 할 것이다. 하나의 교육으로서 체육은 땀을 흘리는 것이나 심장박동을 더 빠르게 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놀이체육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보라. 과연 그것이 교과를 향하고 있는가? 놀이체육은 학생들의 즐거운 신체활동 경험, 그것이 목적이다. 학생들이 많이 움직이게 하고, 움직임을 좋아하게 하는 것은 체육에서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 자체로 교과를 정당화하는데에는 문제가 있다. 어떤 경험을 통해 학생을 변화시키려면 일회적인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형 속에서 학생들이 해당 주제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상태로 진보할 수 있도록 시도하게끔 해야 한다. 이것은 양만 채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양과 질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한 단원을 구성하는 각각의 과제가 뚜렷한 관련성 속에서 점진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학생들 역시 그러한 관련성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
초등교육이 처한 두 번째 고질적인 문제는 개개의 교사가 교과 교육에 숙련될 수 없는 환경에 있다는 점이다. 아마 초등교사 대부분은 초등교사들이 비숙련 상태에 놓여있다는 말에 대해 발끈할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교사가 하는 일이 곧 교육'이라는 습관적 사고에 영향으로 보인다. 교사가 교육을 하므로 누구보다 교육을 잘 알고 실천할 수 있다는 명제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이 늘 타당한가? 다른 시각을 통해 본다면 이 말이 항상 옳다고 볼 수 없다. 만약 어느 교사나 교사집단이 편협한 교육관을 갖고 있다면 그들의 실천이 교육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등교사는 어느 한 교육에 집중하기 어렵다. 담임제의 수업 운영에서 교사들 대부분은 한 차시의 수업을 곧바로 반복할 수 없으며, 그러한 수업이 끝나고 자신의 수업을 깊이 있게 성찰하기 어렵다. 교과가 무엇인지, 그 교과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어진 대로 믿고 나갈 뿐, 교과가 어떤 의미인지, 자신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기 어렵다. 초등교사가 가진 가장 훌륭한 근무 조건은 다양한 교과를 동시에 가르침으로써 특정 교과 가치에 매몰된 편협한 교육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 있지만, 이것은 거꾸로 어느 한 교과를 깊이 있게 탐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매일이 바쁜 초등교사는 주어진 것이나 다른 사람이 만든 내용을 교육하도록 유인된다. 많은 초등교사가 외부의 자료를 검토하고 적용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교과의 의미나 교육적 가치를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는다. 바쁜 교사에게 깊게 성찰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초등교사들은 쉴틈없이 학생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지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여러 교과에서 해당되는 것이지만, 유독 체육 교과에서 더 도드라진다. 체육은 일단 하기만 해도 잘하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가르치려는 과제의 적절성이나 교육적 의미, 그리고 더 나아가 체육 교과의 공교육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고민할 동기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놀이체육은 이러한 무비판적 실천을 재촉한다. 많은 놀이체육 컨텐츠가 마치 물티슈를 뽑아쓰는 것처럼 '당장에 쓸 수 있는', '하나로 끝낼 수 있는' 것임을 어필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라. 이것들을 활용하는 일은 교사에게 게임의 사소한 조건을 변형하는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 게임이 거대한 신체활동의 문화와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교사가 성찰하도록 이끌지 못한다. 즉, 놀이체육은 교사들이 기술적인 숙련에 조금 익숙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초등체육의 전문성을 길러주는 일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글이 한 번에 읽기 길고, 추가된 내용이 있어서 다음 포스팅에서 나머지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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