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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에 대하여/체육일반

[한선생의 체육잡설] "참 나쁜 체육수업이네요!"(1)

 

"참 나쁜 OOO"

 

 

  일상적인 어휘들의 조합이 특별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특별한 맥락이 있어야 한다. "참 나쁜 OOO"라는 이 말이 의미를 갖게 된건 故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힐난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은 오히려 사상 초유의 부정부패로 스스로가 '참 나쁜 대통령'이 된 특별한 맥락 때문이다. 이렇게 익숙한 단어가 상당한 무게감을 주는 것은 꽤 인상적인 일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참 나쁜 OOO"라는 표현을 빌어 "참 나쁜 체육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체육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직도 많은 시도교육청에서 수업실기대회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경기도는 없어졌다. 경기도는 한때 수업실기가 가장 활성화된 지역이었음에도 아주 짧은 기간의 논의과정 이후에 소멸하였다. 수업실기대회라는 제도에서 발생한 문제점이 주는 폐해가 상당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 포스팅에서 수업실기제도의 폐해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깊게 기술하지는 않겠으나, 짧게나마 말해두는 것은 수업은 일년에 한 두번 보여주는 쇼가 아니며, 그 쇼를 위해 학생들에게 특정한 학습훈련을 시키는 것은 그다지 교사답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수업은 한 차시를 위하여 스무시간 넘게 연구한 결과가 아니라 장기간의 숙고 끝에 일어난 통찰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마치 향처럼 풍기는 '습관'이다.

 

  좋은 체육수업에서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은 수업을 하는 교사가 어떤 교육적 관점을 바탕으로 수업을 준비하느냐이다. 체육 수업에서 복잡한 설계나 수업 모형의 적용은 '되면 좋은', '금상첨화'인 것이지 그것이 좋은 체육수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없다. 이번 포스팅은 초등학교에서의 체육수업 뿐만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의 체육수업에서도 생각해볼 문제들로, 참 나쁜 체육수업에서는 어떤 장면이 나타나는가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1 .아나공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 일을 한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남을 가르친다.

남을 가르칠 능력조차 없는 사람은 체육을 가르친다."라던 우디앨런의 망발을 생각해보자.

 

  참 나쁜 체육수업의 1번은 모두가 예상하듯 아나공(Roll out the balls)이다. 아나공 수업의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것도 아니다. 이는 수많은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체육수업자의 비전문성과 무책임함을 반영하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아나공 수업을 다른 말로 바꾸어 설명하자면 '자유시간'이다. 수업 목표는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개방된 창고에서 자유롭게 교구를 꺼내 자기 할 것을 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서의 아나공 수업은 교육과정과 관련성이 거의 없는 모든 수업으로 해석해도 된다(필자의 개인적인 견해). 피구나 축구를 하는데 교사가 심판을 보고 있으니 아나공이 아니다? 그럴 법이...그것도 넓게 보자면 아나공수업이다.

 

아나공 수업을 하는 교사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만한 표현을 인용하자면...

 

"아나공 수업이 기본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계획이 없고, 가르칠 기술이 부족하며, 조직화도 안되고, 교육과정도 없으며, 목표도 없고, 목적도 없고... 아무런 교육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교사들은 중요한 일을 하고 거기에 맞는 합당한 월급을 받는다. 근데 이게(아나공수업이) 우리가 가진 최선인가?"

 

탈(脫) 교육과정 수업에 대해 할말이 참 많으나 여기서 그친다.

 

 

 

2. '연습하는 줄은 한 줄, 공도 한 개, 배우는 학생도 한 명'

 

줄을 세우면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뒤에 서있는 동안 아이들은 배우는 것이 없다.

 

 

  참 나쁜 체육수업의 두 번째는 하는 아이는 한 명, 나머지는 눈만 멀뚱거리는 수업이다. 숫자를 '하나'라고 표현하기는 하였으나 적은 배움의 기회를 갖는 모든 활동이 여기에 해당된다. 대체로 학생 수에 비하여 교구나 시설의 숫자가 적은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농구 슈팅을 하기 위해 골대 앞에 한 줄로 서서 연습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40분 동안 한 명의 학생에게 돌아가는 슈팅 기회는 몇 번이나 될까? 기회의 양적 측면 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도 생각해보자. 줄 뒤에 있는 학생들의 짜증 섞인 압박 때문에 슈팅할 기회에도 제대로 된 동작을 하지 못하고 서둘러 공을 던질 가능성도 크다. 스스로가 하는 피드백이든, 교사에 의한 피드백이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부실해질 것이 틀림없다. 골대가 30개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생각한다면 골대를 대체할만한 대용물이나 다른 신체활동(드리블이든 어떤 것이든)을 다른 스테이션에 꾸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3. 학생 디스플레이 하기

 

아이들이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과제 수행에만 집중하게 하자.

 

  학생을 디스플레이한다는 것은 한 학생의 과제수행을 수 많은 학생들이 지켜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 형태는  '연습하는 줄은 한 줄, 공도 한 개, 배우는 학생도 한 명'인 수업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주로 학생들이 반복적인 과제 수행이나 기술 연습, 테스트를 할 때 다른 학생들은 앉아서 보기만 할 때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자신의 운동 수행을 다른 학생들에게 노출하게 된다. 수행하는 과제와 관련하여 재능이 뛰어나거나 자신감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을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겠지만 자아개념이 낮거나 운동 기능면에서 취약한 학생들에게는 끔찍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이 포스팅을 읽으면서 '디스플레이'를 통해 배운다거나 서로 가르칠 여지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그거야말로 큰 문제다. '서로 가르치기'는 교사의 철저한 자료준비와 계획이 없는 경우 아주 우연적으로 발생한다. 학생들은 어떻게 친구를 도울지 생각하기 보다 평가(evaluation)하는데 익숙하며, 그러한 행동이 놀림이나 비하, 평가절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오로지 수행 과제에 대해 집중할 수 있도록 수업을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한 줄로 하는 수업이 마찬가지겠지만 믿을 수 없을만큼 많은 수업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4. 정식 규격을 쫒기

 

아이들은 아이들 수준에 맞는 교구과 학습내용으로 체육수업을 받을 권리가 있다.

 

  체육수업에서는 아주 다양한 게임들이 수업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매우 안타까운 것은 수업의 소재와 교육과정 상의 목적을 구별하지 않는 수업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육과정 상에서 네트형 게임을 다루고 있는 경우 배구나 배드민턴, 족구, 테니스 등이 수업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종목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네트형 게임의 기본 기능이나 전략을 포함하는 속성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지만 많은 경우 종목 자체를 가르치려든다는 것이 문제이다. 종목 자체를 가르치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달을 보랬더니 손가락을 보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16~20차시 정도의 수업을 통해 정식으로 배구를 가르칠 수 있을까? 학생들이 방과후에 따로 시간을 내서 열심히 연습하는 경우라도 경기 전략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패스와 토스의 기능을 배우는 것으로 그칠 것이다. 따라서 정식 규격의 경기장이나 교구, 규칙에 반드시 맞출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식 규격을 벗어나,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교구와 규칙을 활용하고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제한적인 학습 도달 수준을 고려하여 게임의 기능과 전략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수업을 조직하여야 한다. 그것이 배구라면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실제 규격의 배구공이 아니라 소프트발리볼을 사용할 것이고, 낮은 점프로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네트의 높이도 낮춰야 할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기능 숙달에 대한 교사의 기대도 낮춰야 하는데, 네트형 게임의 기본인 빈공간에 대한 공격과 수비, 안정적인 공 연결에 초점을 두어 학생들의 자세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게임의 속성을 이해하는지에 대하여 교육적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참 나쁜 체육수업이네요!" (2)에서 계속...

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37

 

 

 

 

 

 

 

참고문헌

•Williams, N. (1992). The physical education hall of shame. Journal of Physical Education, Recreation and Dance, 63 (6), 57-60.

•Williams, N. (1994). The physical education hall of shame, part II. Journal of Physical Education, Recreation and Dance, 65 (2), 17-20.

•Williams, N. (1996). The physical education hall of shame, part III. Journal of Physical Education, Recreation and Dance, 67 (8), 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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