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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에 대하여/체육일반

[한선생의 체육잡설] 초등학교 체육수업 내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편)

 

 ※이 글은 필자의 학술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쓰인 현상학적 글쓰기 습작을 포함하는 글로, 일부 내용은 학술지에 게제된 내용이므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앞선 글(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25)에서 교사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아나공 수업이나 놀이체육, 교실체육을 선호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나는 학급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체육수업 내용의 결정이 아나공이나 교실체육, 놀이체육이라는 결론으로 흐르는 것이 결국에는 탈 교육과정 수업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탈 교육과정 수업은 체육교육에 대한 교과관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몇가지 인식과 관련이 있었다.

 


탈(脫) 교육과정 수업을 하는 이유

 

  "일단 재미있어 하잖아요, 아이들이. 우리가 수업을 위해 어떤 교재연구를 하건...물론 교육과정의 맥락을 완전히 벗어나서는 안 되긴 하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수업을 착안을 해야 하니까... 즐거워하니까... 피구를 한다거나 축구를 한다면 어쨌든 즐거워하니깐."

-J교사의 인터뷰

 

  탈(脫) 교육과정 수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경험하는 즐거움이다. 즐거움은 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체육 교과의 가치이며 모든 체육수업은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체육수업에서의 즐거움은 탈 교육과정 체육수업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며 동시에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베품이다. 많은 교사들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즐겁길 바라듯 그녀들 역시 체육수업으로 인해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지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탈 교육과정 수업은 이런 적극적인 목적에 의한 행위라기보다 체육수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개인적인 차원에서 체육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리고 진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평가도 없잖아. 나중에 어떻게든 최종적인 평가는 수능이든 고등학교 내신이든 간에, 체육을 중심에 두고 평가를 하지는 안잖아. 그런 식으로 예체능에 대해서는 중요한 교과라는 인식이 없는 거지."

-J교사의 인터뷰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엄격하게 평가할 것인가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중요한 관심사인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벌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진로를 결정하는데 평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평가는 교사들에게 대단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평가는 수업 내용과 나눌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수업을 제대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많은 교사들에 의해 체육의 평가는 진로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상급학교 진학 내지 상급학년 진급 이후의 평가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체육은 그녀들에게 외적 압력이 거의 없는 교과이다. 다음 대화에서도 그녀들의 인식이 잘 드러난다.

 

J교사: 부모님들의 항의도 관련이 있지 않아 싶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수학을 ‘3단원은 별 필요가 없는 것 같아’하는 생각에 진도 상 뒤로 빼서 ‘여름방학 전에 할래’하고 3단원을 빼고 4단원부터 진도를 나간다, 이러면 항의, 민원 발생의 소지가 있는 거죠. ‘왜 우리 반은 각도 단원을 안 나가느냐’. 그런데 체육, 미술 이런 단원에 대해서는 (웃음) 그런 민원이 절대 발생할 일이 없다는 거죠.
: 아이가 수학교과서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는데 체육교과서에 대해서는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Y교사: 맞아요, 맞아. 부모님 세대들도 다 체육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수업을 교육과정대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체육은 평가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다보니 수업 내용 역시 가볍게 여겨진다. 학부모들은 주지교과로 부르는 국어나 수학, 사회, 과학과 같은 교과의 수업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체육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이는 교육과정대로 체육수업을 하는 것에 대한 그녀들의 외적 동기를 잘라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교육과정과 무관한 체육수업을 하는 더 큰 이유는 외적 요인보다 내적 요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제한된 10분. 그 10분 안에. 그러다보면 만약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구를 세팅해서 수업을 하려다보면 수업시간이 줄어드는 거고. 그렇게 안한다면 교육과정에 맞는 수업을 위한 교구를 세팅하지 못한 채 다른 수업을 해야 하는 거고. 작년에는 부장님이 다 해줘서 그냥 고마운 줄도 모르고 (웃음) 고맙긴 했어. 그런데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우리 수업 준비하느라 아침에 나가서 운동장에 물로 선을 긋고 그 위에 백회로 한 번 밖에 더 긋지 않았는데도 그것도 시간이 꽤 걸리더라구요. 시간, 에너지 소모가 만만치 않았어요."

-B교사의 인터뷰

 

  체육수업은 다른 교과 수업에 비해 준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대게는 교실에서 떨어져 있고, 수업에 따른 학생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넓기 때문에 교구와 수업 환경을 준비하는데 다른 교과에 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교육과정을 벗어나서 수업을 구상한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한 내용을 피할 수 있다. 거기에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활동을 하게 된다면 광활한 운동장에서 수업내용을 설명하느라 목청에 힘 줄 필요도 없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수업이 부드럽게 운영된다. 더군다나 특별한 기능을 향상시키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는 내용들은 시범을 보일 필요도 없으니 자신의 운동 기능이 부족한 것에 대한 걱정도 해결된다.

 

  "연계성이 있는 수업은 교재 연구를 어느 정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교실 놀이는 내가 이번 시간만 하면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한 시간의 내용만 파악하고 있으면 충분히 수업이 이루어지는데, 연계성이 있는 수업은 중단원 지도에 한 달 가량이 소요된다고 치면 한 달의 내용을 내가 다 파악을 해야 하고.. 그런다면 양이 상당히 많아지는 거죠. 제가 미리 공부를 해야 하는."

-J교사의 인터뷰

 

  교육과정에 맞게 수업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차시와 차시 사이의 연계성이 중요한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연구해야 할 수업 내용은 그녀들에게 너무 많게 느껴진다. 성공적으로 연계성이 있는 수업을 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도 교육과정대로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한 큰 걱정거리다. 그녀들에게는 차시 안에 완전학습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부담감도 크고, 단원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과 계획대로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경험도 부족하다. 그녀들은 체육수업 전문성의 부족에 대해 통감하고 있지만 막상 더 나은 체육 수업자가 되기 위한 실천에 박차를 가할 마음의 여유는 부족하다.

 

 

‘동조 현상’과 ‘깨진 유리창 이론’: ‘동조’가 깨버린 ‘유리창’

 

  "우리가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 같은 것도 그렇잖아요. 옆 반이 강낭콩을 키우는데 우리 반만 안 키우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마음 때문에 강낭콩을 키울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만약에 동학년 모두가 강낭콩을 안 키워, 그러면 강낭콩을 키울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비록 과학 교육과정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러니까 우리 작년에는 체육 시간에 괜히 ‘나는 이게 싫어’하고 저걸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가도 다른 반이 다 하니까 그냥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으로 가는 것 같아."

-J교사의 인터뷰

 

  만약 다른 반이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제대로된 체육수업을 하였을까? J교사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에도 늘 그래왔듯 탈 교육과정 체육수업을 하였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J교사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체육수업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이 없다면 내 옆의 교사들이 안하는 것을 굳이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체육수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교사의 개인적 어려움은 각각의 교사에게 어떤 수업 행위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학교 안의 체육수업에 대한 분위기 역시 개인으로서의 교사에게 어떠한 수업을 할지 영향을 미친다.

 

교육과정의 관점에서 볼때 아나공수업이나 놀이체육, 교실체육은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이다.

 


  ‘동조’란 일반적으로 사회적 영향에 의해 나타나는 행동으로 자신이 속한 조직의 구성원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개인의 의견이나 행동으로 닮아가는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이 조직에 동조를 하는 까닭은 인간은 규범이나 집단의 압력에 순종함으로써 인정받고자 한다는 이론과 집단 규범에 대한 비동조가 집단에 대한 일종의 공격으로 간주되므로 동조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배척을 피하기 위해 동조하게 된다는 이론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동조행동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이라도 일탈자가 있는 경우 동조는 줄어들게 된다(Asch, 1956).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학교에 형성된 탈 교육과정 체육수업의 분위기는 교사 개인들이 어떤 체육수업을 할지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탈 교육과정 체육수업이 자칫 체육교과의 무질서를 넘어서 교과로서의 무용론으로 번지게 만드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일탈이 확산되어 나중에는 도시 전체가 무법천지가 될 수 있다는 사회 무질서에 대한 이론이다(Wilsn & Kelling, 1982). 체육 교육과정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다면 종국에는 체육이 교과로서의 가치 또한 점차 희미해질 수도 있다.

  아나공 수업이나 교실체육활동과 놀이체육이 체육수업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교육과정을 벗어난 체육 수업만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육과정에 맞는 체육수업을 실천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체육수업을 실천하기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함으로써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체육수업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체육수업을 실천하기 위한 공동체를 더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법을 구안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리고 실행 과정과 결과를 나누고 전파할 수 있다면 체육수업을 동료교사들과 협력하여 실천하고자 하는 일선 교사들에게 분명한 도움을 줄 수 있고, 초등학교 현장에서 학년 단위로 체육수업을 실천하기 위한 공동체가 자생하는 움직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Asch(1956).Studies of Independences and Conformity, Psychological Monographs, 0(9), 416-420.
Wilson & Kelling(1982). Broken-windows, The Atlantic Monthly, 249, 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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