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의 학술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쓰인 현상학적 글쓰기 습작을 포함하는 글로, 일부 내용은 학술지에 게제된 내용이므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앞선 글(http://betterthanever123.tistory.com/124)을 통해 체육수업의 문제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함을 밝혔다. 초등학교 체육수업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나는 가까이에 있는 세 명의 교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J교사와 B교사, Y교사는 모두 여교사로, 교육 경력은 각각 11년, 7년, 2년이며 나와는 같은 학년에 근무를 한 경험이 있는 열정적인 담임교사들이다. 굳이 왜 여교사들과 대화를 나누었는가에 대해 밝히자면 초등학교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여성인 교사들이며, 체육수업에 대해 비교적 더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도 여교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체육수업의 문제점들은 비단 여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교사들의 문제였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체육수업의 민낯에 대해 아주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나공 수업과 교실체육활동 그리고 놀이체육를 하는 속내
"아이들도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왜 피구 안 해요?’하고 물어봐요. 이미 저학년 때, 저학년 아이들일 때 뭔가 가르쳐주고 교육과정대로 가르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그러다보니까 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체육시간, 최고의 활동은 피구하고 축구 이런 것들이었던 거야. 그러다보니 얘네들은 ‘가장 익숙했던 피구를 안 하고 왜 다른 걸 하나?’하고 오히려 이상해 하더라구요."
-B교사의 인터뷰
교사에게 있어서나 학생에게 있어서나 체육 수업의 가장 큰 관심은 ‘재미있는 체육 수업’이다. 운동장에서 교사의 즐거움은 아이들의 즐거움에서 비롯되며, 아이들의 즐거움은 재미있는 신체활동에서 나온다. 언제나 교사들은 체육수업시간에 아이들의 표정을 살핀다.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으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야말로 체육수업에 대한 교사의 자존감에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아나공 수업의 묘미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논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길 아나공이야말로 아이들에게 학습훈련이 이미 완료된 하나의 수업형태라고 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교육과정을 벗어난 수업에 더 길들여져 있었다. 아이들의 ‘체육 세계’에서 아나공 수업은 체육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교사들의 수업에 대한 최고의 인센티브이다.
사진출처: http://heejun.tistory.com/35
"저는 교실 게임을 많이 하고 있는데, 교실 게임을 하는 이유는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서 예요. 예를 들어서 매트운동 같은 것들을 할 때 원래 앞구르기, 뒷구르기, 물구나무서기 이런 것들이 교과서에 차례대로 있는데, 안전 때문에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고...그러다보니 앞구르기만 하고 남은 차시는 교실 활동을 하게 돼요. 저는 교실 게임을 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을 안 해요."
-Y교사의 인터뷰
요즘 들어 다양한 교실체육활동들이 현장에 소개되고 있다.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몰입하여 신체활동을 할 수 있다. 특히 근래 들어서 대기의 질이 나빠짐에 따라 교사의 자의든 타의든 교실체육활동은 확산되어 가고 있다. 교실 안이라면 뜨거운 태양도, 숨 막히는 모래먼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녀들은 교실에서 체육 수업을 할 때 한 시간 동안 ‘때울 수 있는’ 수업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그것들은 대체로 교육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그녀들의 선택 이면에는 안전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교육과정을 녹여낸 교과서의 내용들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교과서에 나와 있는 활동들은 너무도 위험천만한 것들이다. 교육과정의 수호자로서의 사명도 ‘손 짚고 옆돌기’나 ‘물구나무서기’의 페이지를 펼쳤을 때 쉽게 사그라든다. 결국에는 교과서에서 가장 쉬워 보이는 활동만 겨우 마친 채, 단원 하나를 ‘했다고 치고’ 넘어가고 만다. 교실체육활동을 선호하는 것은 비단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들에게 체육교구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꺼내야 할지 엄두가 안 나는 것들이다. 결국 그녀들은 교구들에 대한 걱정 없이 간단한 소품이나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교실체육활동을 즐겨한다. 이런 점에서 교실체육활동은 그녀들에게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교육과정에 없지만 내가 알아낸 특이한 놀이 활동들은 우리 학교에서 나만 알고 있는 활동이잖아요. 일반적인 체육보다는 우리 반만의 어떤 특별한 활동이 될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나름 그 안에서 ‘우리 반은 뭔가 특별해’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을 느끼면 아이들이 훨씬 더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 반’이라는 자부심도 느끼게 되고. 그런 마음에서 놀이를 하기도 해요."
-J교사의 인터뷰
아이들의 즐거운 신체활동에 대해 관심이 많은 교사들은 다른 학급에서 시도하지 않은 특별한 놀이체육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런 놀이체육은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만의 체육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특별한 체육수업을 하는 반이라는 자부심과 동시에 교우관계의 돈독함을 더한다. 이러한 효과 때문에 교사들은 책이나 교사 커뮤니티 사이트와 같은 경로로 특별한 놀이체육 수업에 대해 연구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미 해 본 것들 가운데 재미와 수업관리 상의 효율성이 검증된 것들의 레퍼토리를 활용한다. 이러한 놀이체육 활동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낮은 운동기능 수준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과 수업 연구의 시간이 비교적 짧다는 것이다. 놀이체육이 교육적으로 가지는 가치가 놀이체육을 하는 겉으로 드러난 이유라고 한다면 운동 기능의 수준차이를 고려한 개별화된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단원 내의 연계성을 고려한 수업 연구에 대한 부담감은 놀이체육의 숨겨진 이유이다. 그러나 놀이체육을 하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교사를 좋아하게 된다는 점이다.
"교실놀이를 하고나면 아이들은 저에게 재밌다! 또 하고 싶다! 오늘 너무 즐거웠다! 등을 이야기하거나 일기장에 씁니다. 또 부모님께 이야기해서, 부모님들께서 상담할 때 저에게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저도 직접 참여하면서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번에는 순발력을 기르겠다는 이유로 함께 얼음땡을 했었는데 아이들이 저를 잡으려고 뛰어오면서 엄청 신나하더라구요."
-Y교사의 메일 면담
교사들은 오래 전부터 체육수업을 학생들을 다루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체육교과 이외의 수업시간에 나타나는 무질서에 대한 처벌로 체육수업을 안하겠다는 협박은 체육전담교사가 없는 상황에서 자주 나타나는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반대의 목적으로도 체육을 활용하기도 한다. 체육시간에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점수를 따고’ 학부모로부터 좋은 교사로 평가받을 수 있다. 특히 교사가 함께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 그러한 효과는 더 강해진다. 그러나 놀이체육이 아닌 교육과정에 맞는 수업을 했을 때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가에 대해 그녀들은 확신을 갖지 못했다.
체육수업의 핵심이 즐거움이라면 수업을 하지 말고 놀이공원을 가는 것이
체육교육 목표에 다가가는 더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체육수업에 대한 인식: 즐거움이 최고
"그래도 체육수업 시간은 다른 과목에 비해 즐거워야 하는 시간이라...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이 항상 있죠. 만약 체육수업을 재미없어 한다, 그런데 나는 교육과정 그대로 했고. 그런 수업은 좀...그렇게 체육수업을 하고 싶지 않지."
-J교사의 인터뷰
"체육은 ‘비주지교과’라는 생각이 들어서...미술과 체육은 비슷하게 교사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지만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은 꼭 성취기준에 나와 있는 것들을 가르쳐야 하는 생각이 드는데 체육 같은 과목은 이걸 꼭 안 해서 큰일 나고 그렇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있어요."
-Y교사의 인터뷰
교사의 수업에 대한 판단이나 계획, 실행은 교육적 신념의 영향을 받는다. 수업을 하는 데에는 매우 전문적이고 복잡한 의사결정이 따르는데 이 때 나타나는 교사의 행위는 우연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체육수업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는 수업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진행하며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어떤 성찰을 하느냐까지 체육수업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녀들은 아나공 수업이나 교실체육활동, 놀이체육이 체육교과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체육과 교육과정에 쓰인 목적이나 내용들은 그녀들에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체육은 아이들이 학교를 오는 즐거움이며 그러기에 다른 어느 교과보다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교과이다. 따라서 체육수업은 ‘즐거움’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한다. 그녀들은 그러한 즐거움을 주는 수업을 바탕으로 교사는 아이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즐거운 수업에 초점을 두다보니 체계적인 수업에 대한 관심은 다른 교과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체육은 교사가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쳐도 되는 교과이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교육과정에서 나타난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번 학년에서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음 학년의 체육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기에 학년 사이에 있는 학습내용의 연계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들에게 체육은 성취기준과는 무관하게 차시를 통합하고 교사가 자유롭게 정한 내용을 바탕으로 수업을 할 수 있는 교과였다. 아나공 수업과 교실체육활동, 놀이체육은 결국 ‘탈(脫) 교육과정’의 수업이었다.
-초등학교 체육수업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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