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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에 대하여/체육일반

[한선생의 체육잡설] 함께런, 그리고 키즈런은 과연 순항할 것인가

 

 

 

#오늘 오후 2시경, 수석교사실

  체육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택교육지원청에서 공문 하나가 도착했는데, 상의할 내용이 있다고 한다. 매년 진행되는 교육장배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출전 신청 관련 내용이었지만 올해 달라진 것은 '키즈런'의 도입이었다. 체육부장님과 스포츠강사님 사이에 키즈런에 대한 약간의 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일을 추진하는 문제에 대해 얼굴을 맞대고 의논을 하자는 것이었다.

 

 

 

#지난 주 토요일, 경기학생스포츠센터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우리학교 스포츠강사님과 함께 키즈런과 기지개 체조로 구성된 ‘함께런 프로젝트’ 핵심요원 연수에 다녀왔다. 도교육청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였고, 이 연수를 준비한 강사들은 이 사업이 경기도 전역에 확산되길 기대하며 열정적으로 연수를 진행하였다. 2025년을 기점으로 기지개 체조와 키즈런을 전면에 등장시킨 것은 오래전 경기도교육청이 놀이체육을 내세웠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기지개 체조’는 표현활동 또는 체조의 범주로 들어가고, 키즈런은 육상형 변형 게임이다. 기지개 체조는 영상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지도 가능하다. 다만 이걸 실제로 수업에 녹이거나, 콘테스트 참가까지 연결하는 건 전적으로 학교의 선택에 달렸다. 반면, 키즈런은 조금 다르다. 학생 체력 증진 효과는 확실히 있으면서도, 수업 콘텐츠가 빈약한 초등체육 수업에 단비처럼 등장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문제는 비용. 전용 교구 구입에 약 90만 원, 여기에 대회 출전을 위한 버스 대절 비용까지.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오늘 아침 8시경, 교무실

  토요일에 연수를 받은 뒤, 나는 오늘 아침에 교무실에서 교감선생님과 키즈런 도입에 대해 상의를 했다. 우리 학교에는 나와 스포츠강사님 모두가 교육감 위촉 핵심요원으로 활동 중이니, 대회 출전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도 이야기했다. 교감선생님도 큰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들으셨고,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 학교는 무난히 도입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큰 걱정 없이 수업을 들으러 갔다.

 

 

 

#다시 오늘 오후 2시경, 체육전담교사실

  체육부에서 ‘키즈런 관련 의논이 필요하다’는 말에 나는 체육전담교사실로 서둘러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 핵심 쟁점은 간단했다. “누가 키즈런을 지도할 것인가?”

 

  그런데 그 분위기의 절반은 다른 데 원인이 있었다. 오늘 받은 공문에는 모든 종목에 대한 참가학생 명단과 지도교사를 빠른 시일 내에 제출하라는 지시가 적혀 있었다. 보통 스포츠클럽 대회는 출전 당일까지도 명단 변경이 흔한데, 이렇게 빠듯하게 제출하라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더군다나 키즈런은 이제 교육지원청 단위와 학교 단위로 연수를 들어갈 것인데...그러니까 이 공문을 받아본 대부분의 사람은 키즈런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참가하려면 학생을 선발해 명단을 제출하라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교육지원청에서 일을 너무 서둘러 밀어붙인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도교육청에 문의해서 각 교육지원청에 키즈런은 명단 제출에서 제외시키길 요청했고, 도교육청에서도 지역 장학사들에게 그렇게 안내하기로 하였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2학기용 학급 대항 경기였고, 대부분의 스포츠클럽 일정이 마무리된 후 진행되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까. 교내에 학급 대항 경기이니, 누가 대회에 참가할 지 역시 교내 대회를 한 뒤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로써 당장은 ‘누가 지도할 것인가’ 문제를 2학기로 미루게 된 셈이다.

 

 

 

#오후 세시경, 교장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교장실로 가서 교구 구입 관련해 교장선생님과 상의를 드렸다. 다행히 우리 교장선생님은 교육활동을 적극 응원해 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교구 구입과 더불어 수당 지급 관련 예산 편성이 필요할 수 있다는 나의 의견에 대해선 회의적이셨다. 누군가 지도하게 된다면 다른 스포츠클럽 지도와의 형평성을 들어 수당을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교장선생님께서는 수당을 위한 편성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솔직히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언젠가부터 학교에서 공식 수업 외 시간에 학생을 지도하면 당연히 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뿌리내렸다. 학교스포츠클럽도 마찬가지다. 나는 중간 짬밥쯤 되는 교사지만, 예전에는 수당 한 푼 없이 5개 종목을 혼자 지도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와는 참 많이 달라진 학교의 모습이 씁쓸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버스 대절, 교구 구입, 지도 수당까지 합하면 총 200만원 이상이 든다. 지금처럼 모든 종목의 담당자가 다 정해진 상태에서 4월에 새로운 지도 종목을 끼워 넣는 것은 조직 내에 갈등을 부를 뿐이다. 또, 그 교구를 올해 산다고 해서 내년에 선생님들이 교구를 잘 활용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수석님도 결국 내년에 집 근처로 관외 전출을 갈 계획이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키즈런을 도입하는 것은 학교 입장에선  ‘수석님의 체면’ 때문에 감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 헌신하였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체면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에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우수 운영교는 학교표창이 예정되어 있지만, 우리가 이걸 도입한다고 해서 그 표창을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장이 갈등과 비용을 감당하는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들이 수당 없이 추가 지도를 꺼리는 현실처럼, 학교도 인센티브 없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긴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나는 교구 구입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게 생각해야 했고, 남은 나의 수업을 전부 키즈런에 집중하는 것으로 마음의 가닥을 잡았다. 학급당 5차시씩의 수업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 시간을 키즈런 도입에 쓰는 방식으로... 명색이 수석교사인데... 내 수업공개의 목적은 여러 선생님들에게 교육과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업에서 구현하는지 보여주면서 초등체육에 대한 오개념을 바로 잡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 상황상 별 도리가 없었다.

 

 

 

#오후 교장실을 나선 뒤, 체육관 수업준비실

  나와 연수를 함께 받은 스포츠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석교사 수업의 본연을 따르는 수업을 못하게 된 것이 부끄럽고 서글프지만 이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나 대로 남은 학년들의 수업에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키즈런을 도입하고, 스포츠강사님 역시 교육과정과 연계해 키즈런을 지도하여 교내 행사를 추진하고, 선발된 학급을 교육장기 학교스포츠클럽 대회에 출전시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를 위한 교내 행사는 내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하면서 스포츠강사님과 나는 서로 마음을 다독였다.

 

 

 

  오늘 하루, 키즈런이라는 이름 아래서 현실의 무게를 느끼며 여러 감정을 오가는 경험을 하였다. 분명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이고, 나도 그 일부분에 참여했지만, 현장의 조건은 늘 단순하지 않다. 학교도, 교사도, 예산도, 시간도, 감정도. 모두가 조금씩 봉사와 헌신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자칫 그 일은 초등교사들의 마음에 정착하기보다는 나쁜 기억으로만 남는다. 나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바라지만, 지금은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