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저는 학교체육발전을 위한 제언의 주제로 PAPS에 대한 글을 쓴 바 있습니다.
(https://betterthanever123.tistory.com/272)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번의 글에 이어서 학교스포츠클럽에 대한 저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경기도교육청 학교체육정책자문단의 구성원으로 작성하였지만, 역시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 의미 있게 반영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지나온 방식을 검토하는데 필요한 한 가지 질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자가 알기로 학교스포츠클럽이라는 용어가 학교와 체육계에서 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지금이 2024년이니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상식적으로, 20년 정도 지속적으로 운영된 제도가 있다면 처음의 형태야 어떻게 되었건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더불어 현장에 완전하게 뿌리내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스포츠클럽이 발전적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학교스포츠클럽은 형식적으로 운영되며, 실질적인 운영은 몇몇 교사들의 '독박 업무'로 여겨진다. 특히, 주목받을 만한 영역(가령 대교 경기를 포함한 학교 간 교류 등)의 학교스포츠클럽은 극소수의 학생들이 갖는 특권이다. 학교스포츠클럽의 도입이 건강 및 보건교육과 인성교육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형식적인 운영(그리고 그로 인한 소수 교사들의 업무 가중)과 소수 학생에게 집중된 행정력(교사의 노동)과 혜택을 두고 성적표 내용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1. 2016년 한선생의 소박한 소망은 이루어졌는가?
필자가 꽤 오래전에 이 블로그를 통해 학교스포츠클럽의 발전을 위해 제언을 한 적이 있다.
https://betterthanever123.tistory.com/111
그리고 위의 내용을 경기도교육청에도 건의하기도 했다. 그것이 2016년에 있었던 일이었고, 벌써 8년 전의 사건이다. 얼마지않아,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경쟁을 넘어 경험으로 전환하는 학교스포츠클럽 2.0을 발표하였다. 그것이 2018년도의 일이다. 스포츠교육을 내다보는 현명한 시각에서 나온 정책이었으며, 학교의 구성원들에게도 학교체육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긍정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학교스포츠클럽을 변환하는 실효성 있는 정책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초등학교의 입장에서 볼 때, 학교스포츠클럽의 형식적 운영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구조 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초등학교들을 둘러보면 학교스포츠클럽은 필자의 저경력 교사 시절 방식에 비해 크게 발전된 것이 없다. 첫째로, 충실하게 운영되는 학교스포츠클럽은 여전히 소수의 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요즘에는 추가적으로 수당을 주고 가르치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충실하게 운영되는 학교스포츠클럽은 여전히 모두를 위한 학교스포츠클럽이 아니라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학교스포츠클럽으로 운영된다. 대체로 이런 클럽들은 수당을 받는 교사에 의해 지도되는 경우나, 지역사회 혹은 학부모의 요구(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자발적인 동아리의 생성과 참여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2.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필자는 오래 전에 제안하기로, 초등학교에서는 학년별로 충실한 교과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권역별 교류전으로서 학교스포츠클럽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운동을 잘하는 소수의 고학년 학생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3,4,5,6학년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대회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의 단계를 거친다.
[1단계]: 교사(담임교사 또는 체육교과전담교사)에 의해 체육 수업 시간에 특정 종목으로 교육과정의 내용을 학습한다.
[2단계]: 해당 학년의 전 학급 학생이 특정 종목으로 교내 리그전을 한다. 이는 학교스포츠클럽(수업외 시간)으로 운영된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 외에 학교스포츠클럽으로서 자체적인 연습을 할 수 있다.
[3단계]: 교내 리그전 우승 학급은 같은 학령의 다른 학교 학급들과 교류전을 한다. 이도 학교스포츠클럽의 일환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안은 두 가지 병폐를 일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는 소수의 체육 업무 담당자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몰려 소진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수의 학생들만 혜택, 즉 교사의 지도(행정력)와 학교의 예산과 관련한 수혜를 집중해서 받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프레임에서 학교스포츠클럽은 정과교육(체육교과수업)의 심화/발전 내용으로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엉뚱한 종목을 새롭게 가르쳐야 하는 부담도 줄일 뿐더러, 모든 학생이 학교스포츠클럽에 참여하고 교외 활동에 참가할 여지를 열어둔다. 또한 정상적인 체육 수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과정에 벗어난 파행적인 수업 운영을 해결하는 데에도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즉, 이 안은 학교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할 방안인 동시에 초등학교 체육 전반을 개선하기 위한 제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스포츠클럽 2.0이 시행되었지만 초등 현장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교육과정에 벗어난 체육 수업이 대다수를 이루며(중등 자격 기간제가 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들의 헌신(행정력)과 학교의 지원(예산)은 지역 대회를 위해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에게 집중되었다. 90퍼센트 이상의 학생 대다수는 사실상 방치되고, 체육만 하는 것이 아닌 초등교사들이 '갈려나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체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은 각자 체육 이외에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고, 실제로 그 부분을 수행하는 와중에 체육에 추가적인 에너지를 사용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다.).
3.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달라지지 않는 궁극적인 이유를 초등학교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와 그에 따른 불완전한 접근 탓으로 본다. 심신이원론적 가치가 팽배한 사회에서 체육은 부수적인 것으로 다루어진다. 당장 교육 당국도 체육을 살빼고 병을 예방하며 학교폭력을 줄여주기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을 직시한다면 앞선 문장에 문제는 없다고 본다. 다수의 초등교사는 체육을 잘 가르치면 좋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체육 수업을 잘 하고 싶어하지만, 본인의 교육 우선순위에서 다른 교육을 체육보다 더 앞에 둔다. 상황이 이럴진대, 학교체육업무가 누군가의 독박과 희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초등학교에서 학교체육은 누군가에게 큰 에너지의 손실(희생과 헌신)을 강요하지만, 학교 구성원 대다수는 학교에서 어떤 체육 교육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즉, 체육에 대한 기본적인 무관심이 학교스포츠클럽의 형식적 운영의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체육 교과에 대한 가치전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학교스포츠클럽의 질 개선도 요원하다.
그러나 이러한 초등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한 번에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말이 원하지 않으면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다. 초등교사들에게 체육의 열정을 일으키는 것도, 열정을 유지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당장 경력 초기에 체육교과를 전담하거나 열정적으로 학교체육업무를 해 오던 교사들도 경력이 쌓여감에 따라 열정이 식는다. 이는 체육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정체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교대 4년 내내 체육 심화과정에서 스포츠퍼슨의 정체성을 단단히 만들어 나온 교사들 대부분은 체육과 무관한 일을 우선순위에 둔다. 초등교사에게 체육은 교육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기적으로 초등교사들이 체육 수업을 즐거워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거의 관련이 없어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체육 수업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게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한 마음의 상태는 좋은 체육 수업을 해 본 경험을 많이 가짐으로써 생기게 된다. 그리고 좋은 체육 수업을 해 본 경험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체육 수업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체육 수업을 하고 싶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나 쉽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교사교육(연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여러 뉴스포츠 연수도, 놀이체육 연수도 초등교사들을 운동장으로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러한 연수는 어쩌다 운동장에 나오게 할 뿐, 지속적으로 초등교사들이 체육에 관심을 갖게 하지 못했다. 그간 해 오던 지역의 교육지원청이나 시도 교육청의 연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가 부족하거나 콘텐츠에 접근하는 방법이 어려워 수업을 못하는 시대는 지났다.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연결이다. 체육 수업을 잘 하고 싶어하는 교사들이 만나서 소통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교과연구회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방식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각종 연구회는 실제 체육 수업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고민을 들어가며 실제로 무엇을 할지 의논하는 공간과 거리가 멀다. 초등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 주에 무엇을 하면 좋을 지, 단원을 어떻게 구상해서 수업을 준비할 지 실제로 할 일을 이야기할 동반자이다. 보통의 교사들에게 각종 연구회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각종 연수 강사로서의 기회를 공유하는 생산 집단일 수 있다. 따라서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교사에게는 각종 연구회가 새로 진입해 함께 하기엔 부담스러운 '고인물'이자, 잠정적으로는 실제로 같이 수업하지 않으면서 훈수를 둘 것만 같은 '꼰대 그룹'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뉴스포츠나 놀이체육을 연구하는 연구회가 아니라, 지구별로 체육 수업을 하는 담임교사들의 그룹이나 동일한 학년 수업을 하는 체육교과전담교사들의 그룹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지구별 모임' 또는 '권역별 모임'으로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콘텐츠를 전달 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성하게 하는 대전환이 초등학교 문화를 바꿀 것이다. 체육교과가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면 학교스포츠클럽이 중요해지고 활성화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체육 수업을 잘 하게 하는 것은 학교스포츠클럽의 내포를 심화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이 연수를 넘어서 연결을 조력해야 한다는 관점은 이전부터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최근에는 다시 경기도의 한 교육지원청에서 체육담당 장학사로 근무하는 대학 동기에게 진지하게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나고 교사로서 자란 그곳이나, 아니면 지금 근무하고 있는 평택이나 그런 연결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본 포스팅은 경기도교육청 학교체육정책자문단으로서 작성한 내용입니다. 단, 본 내용은 경기도교육청이 아닌, 한선생 개인의 입장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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