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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에 대하여/체육일반

[한선생의 체육잡설] 피구유감(避球遺憾)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jboo/5943617726

최근 들어 이 블로그의 유입 검색어 중에 피구와 관련된 것들이 눈에 띈다. 이 공간에는 피구를 하는 방법이나 다양한 피구 변형 게임을 다루지는 않는다. 종종 들르는 사람들은 알테지만, 오히려 피구에 대한 독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곳이 여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변형 피구, 피구 리그전, 피구 경기, 피구 게임, 교실 피구, 피구 규칙 따위의 키워드를 입력해 찾아온 방문객들이 꽤나 많다. 아마 이런 분들의 대부분은 나의 글에 처음에는 크게 실망할 것이며, 글을 대충이라도 읽고나서는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최근 2학기 전교 임원 선거를 위한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눈에 띄는 것은 후보들 중 상당수가 교내 피구 리그전을 하겠다는 식의 공약을 내걸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2년, 사실상 학교체육이 침체되었음에도 어째서 학생들은 피구를 원할까? 학생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피구는 누가 가르쳤을까? 듣기로는 지난 해 스포츠강사가 피구 수업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한다. 교사들이 불만스러울 만큼 피구 일변도의 수업을 했단다. 올해 전입 온 나로서는 그게 어떤 모습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문헌만 보더라도 중학교에서는 왕왕 피구로 아나공 수업을 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내용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더이상 중고등학교에서 피구로 수업을 떼우는 체육교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는, 피구왕 통키가 방영되었던 나의 국민학생 시절 이후로 30년이 지나도록 피구를 한다(여기에서의 피구는 한 학급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공 하나를 던져주는 식의 피구를 의미한다). 피구는 왜 중등 체육 수업에서 사라지고 초등 체육 수업에서는 남아 있을까? 왜 초등교사들은 피구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고, 그것이 초등교육 집단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좀 먹는 것임을 설명해줘도 교육학적으로 문제 투성이인 자신의 고집을 폐기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을 '해보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체육 수업을 해 보지 않아서. 자신의 스포츠 생활을 즐기는 초등교사는 많지만 체육 수업을 즐기는 초등교사는 많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기존의 컨텐츠로 수업하는 것이 어렵거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교과서의 내용들이 초등학생들에게 꼭 맞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문제라면 요즘 교사들이 그렇게 우습게 여기는(자신들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교육과정 문해력'을 발동하여 교육과정을 해석해 적당한 게임을 만들어 수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초적인 원리로부터 새로운 종목이나 게임, 과제를 만드는 교사는 초중등을 막론하고 찾기 어렵다. 초등은 기존의 종목에서 추출된 과제나 게임이 많지 않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많고, 그래서 더 많은 노력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설상가상인 것이다. 초등교사들은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스포츠에서 파생된 기존 컨텐츠를 활용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하는 것은 훨씬 어려워 곤란한 처지에 있다. 기존에 개발된 과제를 활용하건 새로운 과제를 개발하건, 이 모든 것에는 모두 체육 수업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체육 수업을 다양하게 해보지 않은 교사는 결국 학생들이 잘 아는 것,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피구는 그런 선택의 결과물이다.


만약 피구를 초등학교 체육 교과수업에서 교육적으로 적합하게 활용하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1. 모든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충족한 뒤 시행할 것: 피구는 교육과정상 다룰 근거가 거의 없다. 가르치고 배우기로 법적으로 합의한 내용을 제쳐두고 피구를 가르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최소 교육과정에 나온 것들을 모두 다룬 뒤에 남은 시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소집단의 게임으로 운영할 것: 초등체육에서 4~8명 정도의 소집단 활동의 과제가 권장되는 것은 이미 오랜 상식이다(여러 출판사에서 제작된 교과서의 과제를 보라!) 학생 1인당 활동 시간 및 움직임 탐색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바람직한 수업 내용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한 학급을 좁은 공간에 몰아 두고 하는 피구는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경기장을 여럿 준비하고, 게임 규칙 역시 4 대 4 정도로 운영될 수 있게 수정하라.
3. 명백하게 가르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할 것: 공을 던지는 방법, 공을 받는 방법, 경기 상황에 따른 전략적 움직임을 가르치고, 그것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피드백을 통해 학생들이 더 나은 수준으로 발전하게 해야 한다. 호루라기를 불고, 싸움을 말리고, 공을 던져주는 것에 그친다면 교사는 교육하는 것이 아니며 이며 학생은 배우는 것이 거의 없게 된다.

(공으로 사람을 맞추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을 타격하는 것이 문제라면 복싱, 태권도, 유도는 스포츠의 자격이 없단 말인가?)


오늘도 우리 반 아이들은 체육선생님과의 수업에서 피구를 하고 돌아왔다. 누구는 공을 얻어맞았고, 누군가는 싸웠으며, 게중 일부는 보건실에서 처치를 받았다. 교육적이지 않지만 교사도 원하고 학생도 원하는, 그러한 갈망의 원인이 뚜렷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것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기보다는 은폐하려는 피구 수업. 매우 유감이다.




#피구#변형피구#피구게임#한선생의 체육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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