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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하여/교육 고찰: 개념과 이론

놀이체육비판(2):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上)

글의 순서 (제목을 선택하면 해당 문서로 이동합니다.)
0. 정상 체육 서설: 건강과 유희를 넘어서
1. 놀이체육비판(1):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를 시작하며
2. 놀이체육비판(2):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上) (현재 글)
3. 놀이체육비판(3):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中)
4. 놀이체육비판(4):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칠까?(下)
5. 놀이체육비판(5): 비판의 근본적인 이유(上)
6. 놀이체육비판(6): 비판의 근본적인 이유(下)



앞선 포스팅에서 놀이 체육을 비판하는 것은 초등교육계에서 환영받지 못할 일이라고 했다. 당장 '놀이 체육의 문제점'을 검색해도 제대로 된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경기도 지역에서는 교육종사자들 앞에서 놀이 체육을 비판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로 여겨진다. 대상이 교사이건 장학사이건 연구사이건 놀이 체육에 대한 비판적인 언사를 속편히 듣는 사람이 드물다. 왜냐하면 그들 중 다수는 놀이 체육으로 체육수업을 떼우거나, 그런 연수과정을 만들거나, 놀이 체육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체활동에 대한 교육을 한다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어떤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교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 어떤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상당히 반복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한 반복 없이는 실제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치 있는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차시에 걸쳐 계속해서 반복하는데, 그 내용을 단순한 수준에서 시작하여 점차 복잡한 수준으로 설명한다. 때로는 한 번에 가르칠 수 없어 전체를 부분으로 쪼개 수 차시로 나누어 가르치고 최종적으로는 전체를 아우른다(이런 작업을 타일러의 교육과정 이론에서 학습 경험의 조직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가르칠만한 것들로 여기는 교과의 내용들은 대부분 이런 절차를 거쳐 조직된다.


존 듀이. 사람들이 이 양반의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내가 이런 글을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듀이가 이야기하길, 교육은 물건을 파는 것과 같다고 했다. 물건을 판 사람은 있는데 물건을 산 사람이 없는 거래가 성립하지 않듯, 교사가 학생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정작 학생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면 그걸 두고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상적인 교육은 분명히 배워야 할 것이 있고, 실제로 그것을 배움으로써 학생을 변화시켜야 한다. 만약 교육의 내용으로 다룰 어떤 것이 산만하고 일회적인 활동에 그치고,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알 수 없거나 교육의 목적으로 삼는 변화가 변변치 않은 것이라면 그것을 가치있는 교육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글에서 비판하는 놀이체육은 교육적인가? 산만함과 일회성을 결정체인 놀이에는 이렇다 할만큼 조직할 것이 없다. 놀이 체육으로 알려진 신체적 놀이 활동들은 대체로 한두 차시의 활동에 그친다. 그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학생들은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가? 공을 잘 다루게 되는가? 보다 전략적으로 움직이게 되는가? 어떤 움직임에 능숙해지고 상황을 전략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능력은 한두 번의 체험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면 모두가 가볍게 전문가의 수준에 이를 수 있으리라.

각종 서적이나 연수에서 소개된 대부분의 놀이 체육 컨텐츠에는 신체적 능력을 고도화하기 위한 별다른 장치를 찾아볼 수 없다. 학생들은 놀이의 규칙에 던져질 뿐, 거기에서 움직임의 능력을 기르는 일은 온전히 학생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간주된다. 어릴 적에 했던 술래잡기를 떠올려보라. 원래 달리기를 잘하는 학생이 게임에서 유리하다. 그런 놀이에서 빠르게 달리는 요령이나 방향 전환의 기술을 따로 배울 틈이 없다. 규칙을 알려주고 진행하는 것으로 교사의 역할을 한정한다면 그것을 두고 교육이라고 하기에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교사가 놀이 체육을 선호하는 까닭 중 하나는 교사 입장에서 간단히 이해할 수 있고, 규칙만 설명하면 학생들이 재미있게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알려진 대다수의 놀이는 움직임에 대한 어떠한 변화보다는 재미에 관심을 둔다. 이것이 신체활동에 대한 흥미를 높이지만, 그러한 흥미로 인해 학생들이 어떤 움직임을 깊이 있게 고도화하려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즉, 그 시간 동안 재미있게 땀을 흘리는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놀이 체육은 교사의 관심을 어떤 움직임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고민보다 어떻게 규칙을 잘 설명할 것인가로 옮긴다. 교사의 체육수업 전문성 발달의 방향도 왜곡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하는 걸 두고 체육수업이라고 한다면 체육은 참 속 편한 교과가 아닌가?

요약하자면, 놀이 체육에서는 어떤 영속적인 변화를 가져올만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거나, 그것을 정밀하게 가르치고자 하는 장치나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놀이 체육이 가치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놀이 체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특정한 움직임 능력이나 정서적 상태, 가치관을 부여한다고 말하지만 일회적인 놀이가 실제로 그런 것을 길러주는지 알 수 없다. 많은 교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 한두 번의 놀이 체험으로 그런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교육을 통한 변화는 반복적인 학습이나 다양한 상황에 적용함으로써 일어난다는 일반론적 원리로 보았을 때, 놀이 체육으로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은 도를 넘어선 과장이다. 그런 점에서 놀이 체육이 교육적이라는 주장의 진정성은 의심스러우며, 교육학적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은 방임이 아니다. 신체활동을 본질로 두는 교육에서의 핵심은 실제로 학생들의 움직임 능력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저 뛰고 움직이게 한다고 해서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신체활동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히 신체활동량을 늘리고 땀을 흘리게 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움직임의 질을 향상시켜 학생들이 움직임의 미묘한 차이를 생생하게 체감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체육 교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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