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내가 체육전담이라니!"
체육수업 정상화의 차원에서 많은 시도교육청이 체육교과 전담교사의 배치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2017학년도를 기준으로 3-6학년 학급수를 기준으로 하여, 6학급이상인 경우 반드시 1인 이상의 체육교과 전담교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권고의 형식이지만 사실상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체육교과 전담교사를 희망하는 교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교사들의 경우에 스스로 체육수업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일이 많아 체육교과 전담교사를 하는 것에 상대적으로 더 부담을 느끼게 된다.
체육수업만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불편함도 있겠지만 나름의 보람과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체육수업, 정확히 말해 무슨 활동이 있다고 소개를 하는 연수과정이나 자료는 많지만 체육교과 전담을 어떻게 준비하라는 안내가 거의 없다. 체육교과 전담교사를 처음하는 교사들은 '머리 속은 학년부장이 결정한 교육과정을 탑재, 몸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운동장에 돌격'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처음엔 그랬고, 체육업무를 오래도록 했지만 체육교과 전담교사를 처음해보는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체육전담교사로서 3월을 준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연간 계획 세우기
'교육과정을 가르쳐야지,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지만 대체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거나 학습내용을 재구성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체육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어차피 피구, 축구...끽해야 놀이로 떼우는 경우가... 충실한 체육수업은 교과서에 제시된 활동을 그대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 1년 동안의 수업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이들에게 적절한 활동을 제공할 뿐만아니라 그걸 가르치는 체육전담교사의 수업과 업무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 제일 먼저 교사용 지도서를 훑어보자. 교육과정, 교과서 및 교과서 해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 교과서에 제시된 모든 단원을 다 가르칠 필요는 없다. 성취기준에 맞게 가르치자. 교과서 전부를 다룰 필요는 없다. 한 단원의 일부에서 성취기준의 내용을 모두 다룰 수 있다면 나머지 단원의 내용을 패스할 수도 있다. 교과서 구성에 따라서는 중단원 하나를 패스하는 것도 가능하다. 교과서에 제시한 각종 활동들은 교육과정의 내용요소와 성취기준을 바탕으로 결정된 '예시활동'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하자.
> 체육창고와 체육교구구입 예산을 살펴라. 어떤 신체활동을 지도하거나 안 지도할지를(어떤 단원을 지도하거나 안 지도할지를) 고려할 때 학교에 있는 체육교구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 있는지, 없다면 예산 상 구매가 가능한지 판단하여 가능한 단원 또는 교과서에는 없지만 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신체활동을 가르칠 내용으로 선정하자.
> 학년부장이 주는대로 하지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교내외 체육행사에 맞도록 짜자. 물론 아이들의 선호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교내 학교스포츠클럽 대회와 지역의 교육지원청 단위의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일정을 고려하여 특정 단원(예컨대 경쟁활동의 축구나 농구, 배구 등)을 먼저 가르치고 나머지를 그 뒤에 가르칠 수도 있다. 수업은 수업대로, 스포츠클럽 대회는 스포츠클럽 대회 대로 준비하면 매우 힘들어질 수도 있다.
> 한 학기에 각 영역을 골고루 가르칠 필요는 없다. 몰아서 가르칠 것은 몰아두고, 나눠서 가르칠 것은 나눠 두라. 이렇게 하는 것이 나이스 수행평가 입력도 오히려 간단하다.
> 수행평가 내용도 내가 정하자. 연간 계획을 세웠다면 거기에 맞게 수행평가 계획을 세우자. 내가 의미있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평가 기준을 마련하여 학년 교육과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 가르치는 것과 평가가 서로 겉돌면 안된다. 따라서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평가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원활한 수업 운영을 위해 약속 만들기
체육교사로서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날은 아이들의 체육수업에 대한 기대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첫날 수업시간에 피구나 축구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교사 스스로 '내가 생각하는 체육수업'의 모습을 충분히 생각해보고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자. 어차피 몇 반 돌려서 쓰는 것이니 깔끔하게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준비해도 좋을 것 같다.
> 첫날 오리엔테이션이 중요하다. 체육수업에 대한 교사의 기대를 아이들에게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많은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배움의 목표 없이 노는 시간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인식을 깨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체육시간=노는 시간'의 등식을 깨지 못하면 체육교사는 앞으로 준비할 '배움이 있는' 훌륭한 체육수업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의 무관심과 태만함으로 좌절을 겪게 될 것이다.
> 학습 루틴에 대해 이해시켜라. 모이는 장소, 준비운동 방법, 교구 준비 및 정리, 교사의 각종 신호들을 미리 안내해야 한다. 아마 그 중 몇 가지는 한달이 지나도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몇몇의 아이들은 기억하고 실행한다. 소수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보고 따라 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생각하자.
> 바람직한 체육수업 참여 모습에 대해 안내하라. 체육수업 중 특히 경쟁적 요소가 포함되는 경우 다툼이 많이 일어난다. 일부러 살짝 봐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져줄 수도 있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체육수업의 모든 스크리미지 형식의 활동들은 '배우는 것'이 먼저이지 '이기는 것'이 우선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체육에서의 배움은 '개인 레슨'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더 잘 할 수 있도록 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친구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양보하거나 배려하는 것이 더 가치롭다는 사실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수업에 필요한 개인 준비물 갖추기
체육수업은 아이들에게는 즐겁지만 교사에게는 고될 수 있다. 고된 직장생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복지를 마련하자. 셀프복지는 체육수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많은 편리함을 준다. 준비물을 갖추는 것이 귀찮거나 왠지 돈 낭비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1년은 사용하기 때문에 큰 지출은 아니며, 쓰면 쓸 수록 만족스러울 것이다.
마이크 및 스피커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다보면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활동 중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교사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주 큰 목소리가 필요하다. 맨 목으로 체육전담수업을 하다보면 이내 목이 망가지고 만다. 그래서 마이크와 스피커는 체육교과 전담교사에게 정말 중요한 아이템이다. 너무 큰 스피커를 준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25W이상의 출력은 되어야 운동장에서 교사의 목소리를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모자 선크림을 바르더라도 모자는 필요하다. 하지만 파워레인져 같은 얼굴이 가려지는 선캡은 피하자. 아이들하고 눈은 마주치고 수업해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전 방향으로 챙이 달려있는 정글모를 선호한다. 또, 모자로도 햇볕을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목 부분은 스카프나 손수건을 두르는 것도 좋다.
호루라기 당연히 준비해야 할 아이템이다. 호루라기 소리와 동시에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전자호루라기도 추천한다.
장갑 의외로 장갑을 끼지 않는 교사들이 많다. 장갑은 체육교구에 뭍어있는 미세한 이물질이나 운동장의 먼지, 건조함 등으로부터 손을 보호해 준다. 피부가 민감한 사람의 경우 손등이나 손가락이 갈라지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보습만으로는 손을 보호할 수 없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폴리에스테르 소재보다 면이나 가죽을 추천한다. 나는 가죽장갑을 사용하는데 튼튼하며, 물건을 미끄러지지 않게 잘 잡아주는 장점이 있다. 외출할 때 착용하기 곤란한 망가진 가죽장갑이 있다면 그걸 사용하자.
선글라스 운동장에 오래 머무르면 많은 양의 빛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모래운동장의 경우 모래에 반사된 햇빛이 만만치 않다. 내 경우는 그렇지 않지만 어떤 교사들은 어지럼증이나 두통을 느끼기도 한다. 운동장에서 눈을 찌푸리지 않고 편안하게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선글라스는 필요하다.
새 학년도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자. 새학기 시작하기 한달 전의 준비가 1년을 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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