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군복무 2년을 제외한다면 경력이 길지는 않죠. 저는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항상 체육업무를 해 왔습니다. 작년에는 운이 좋아서 체육전담교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잘 모르겠네요. 학교 사정으로 인해 아직 업무나 전담 혹은 담임 배정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거든요. 저는 운동을 잘 못하는 남자 교사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아마도 남자인데 운동 어느 정도 하겠지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근데 정말 운동에 소질이 없습니다. 남들보다 배우는 것이 느리고 스포츠 경험도 부족한 편이거든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고 오해를 합니다. 겉보기는 제법 단단하고 날렵해 보이거든요. 어떤 경영컨설턴트가 문제를 ‘기대하고 있는 상태 – 현재 상태’라고 정의했다는데, 제 주변사람들이 보기엔 제 체육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겉보기보다 운동을 못하는 허당이라서 망신살 뻗치는 경우도 참 많았거든요. 운동, 잘 하고 싶지요. 운동 잘하는 선생님들보면 부럽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딱히 따로 시간 내서 배구나 배드민턴과 같은 것들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체육에 대한 관심은 일차적으로 가르치는데 있기 때문이거든요. 운동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체육업무를 해 올 수 있었는지, 왜 체육을 가르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실지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체육은 저에게 큰 은인입니다. 저는 허약했고, 운동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다니면서 동아리에서, 그리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체육은 정신적, 사회적으로 미숙아였던 저를 어른의 세계로 안내해주었습니다. 아마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도 체육이 제게 많은 것을 베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내가 체육을 일찍 시작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틀어 수업 시간이나 점심 시간 때 운동을 잘 하건 못하건 열심히 하긴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체육 소외자였던 것 같네요. 허약하고 기능이 부족했던 제게 적합한 피드백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설명하자면 학창시절 저는 교사로부터 체육수업시간에 방치되었다는 거죠. 저는 체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성인이 되고 나서의 체육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적합한 과정이 뒷받침된다면 학교체육을 통해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체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운동에 딱히 소질이 없는데도 체육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저는 체육수업에서몰입을 통한 행복, 관찰과 반성을 통한 성장을 경험하게 하고 싶습니다. 학교에 있는 어떤 누구든 그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생이든, 교사든 말이지요. 그런데 장애물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체육을 가르치고 할 여건도 문제이고 학교체육에 대한 인식도 문제입니다. 그 중 제가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 학교체육에서의 소외와 방치입니다. 체육이라는 관점에서도 학교에는 다양한 수준이 존재한다. 교사도, 학생도. 평균이하에 속해 있는 이들의 소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학교체육에서의 소외와 방치는 공통적으로 ‘체육수업을 통한 성장 경험’으로부터의 추방이라는 결과로 연결됩니다. 물론 이러한 명제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30년이 넘는 제 인생경험에서 주관적으로 보기에 그렇습니다. 소외와 방치의 ‘주어’는 대체로 교사와 제도일 것 같고, ‘목적어’는 학생과 교사일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학급마다 체육수업을 싫어하는 학생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피구할 때 먼저 공을 맞고 나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다. 체육하고 싶대서 운동장에 데려갔더니 운동은 안하고 그네에 앉아 수다를 떠드는 학생들이 많다. 체육수업 시간만 되면 몸이 아프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다. 함께하는 체육활동에서 혼자하거나, 팀 구성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발야구나 축구를 할 때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 학생들이 있다.
위의 예는 학생들이 체육수업에서 소외를 경험하거나 방치되는 경우입니다. 학생 개인의 측면에서 체육수업시간 중에 유능감을 못느끼거나, 활동 전반에 걸쳐 기여를 못하는 경우 소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사의 지도 측면에서는 단체활동에서 학생 개인에 대한 적절한 역할 부여를 실패하거나 과제를 수준을 고려해 개별화하여 제시하지 못한 경우에 발생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외받는 아이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체육시간에 즐거운 표정을 짓는 학생들만 보고 웃음소리만 들으려는 교사라면 자신의 체육수업을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업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식으로 학생들의 반응을 '선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체육수업을 평가하기엔 교사로서 뭔가 떳떳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능한 독재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체육수업을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체육수업을 할 때 가끔씩 교대에서 도대체 뭘 배운 건지 불만이 터져 나온다. (교육과정과 관련없음에도) “오늘 수업은(도!) 피구/축구/발야구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활동을 하기엔 아이들 흥미를 끌어낼 수 없을 것 같고...답이 안 나온다. “수업시간에 말썽을 피웠으니 오늘 너희들 체육수업은 없다.” 시범을 보이려니...기능이 안 된다. "얘들아, 사실 선생님도 뜀틀이 무서워.' |
위의 예는 교사들의 체육수업에 대한 소외와 방치의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제도나 조직이 체육수업에 대해 교사들을 소외시키고 방치시킨 결과라는 말이지요. 체육수업을 잘 하기 위한, 학교체육을 잘 하기 위한 컨텐츠나 직장내연수(OJT)도 없으며, 상급기관 차원이나 외부기관에서의 교육받을 기회도 부족합니다. 저는 위의 예가 결코 순전히 교사 개인의 잘못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체육교과를 전담하여 가르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체육수업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많은 여선생님들이 어려움을 경험하는데, 전체 초등교사 중 80퍼센트 이상이 여선생님인 현실을 감안하면 대단히 큰 문제입니다. 교육과정의 내용도 부담인데 하물며 학교스포츠클럽에서 배구의 스파이크를 가르친다거나 육상의 높이뛰기를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요?
저는 앞서 운동을 못하는 사람으로 30여년을 살아 온 남자교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체육활동에서 소외받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체육수업에 곤란함을 겪는 선생님들을 보면 저의곤란함처럼 느낍니다. 제가 운동을 못하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공감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체육을 하는 것, 다시 말해 교사로서 체육 수업이나 체육 업무를 하는 것과 학생으로서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글을 틈틈이 이어서 쓸 계획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것, 경험하고 있는 것들에서 들었던 생각이나 작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대단치 않은 저의 이야기에 여러분들의 귀한 이야기를 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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