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초등학교 체육을 스포츠와 놀이 사이에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정설처럼 다루어졌다. 체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놀이-게임-스포츠를 일련의 단계로 여겨왔으며, 그것이 일종의 고도화 과정인 것처럼 설명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논의에 따르면 놀이와 게임, 스포츠는 아래의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놀이와 게임, 스포츠가 가진 여러 측면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놀이와 게임, 스포츠는 모두 유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쟁적 요소는 게임과 스포츠에만 포함된다. 반면 단순 경쟁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은 스포츠만의 특성이다.
두 번째로, 규칙의 특성에 따라 설명하는 방식이다. 놀이의 규칙은 임의적이라 매번 할 때마다 바뀔 수 있다. 반면 게임은 놀이에 비하여 비교적 지속적인 규칙을 사용한다. 즉, 그 게임을 아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정해진 규칙을 공유하지만 합의에 의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예컨대 로컬룰의 적용). 이에 비하여 스포츠는 매우 안정적인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적인 기구(예컨대 축구의 경우 FIFA)를 통해 규칙이 조율된다는 점에서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게 된다.
이런 관점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초등교육에서의 체육교과는 게임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중등교육(중고등학교)에서는 스포츠를 가르치는 것이 적합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체육교과의 제재로 게임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것으로 여겨지는 놀이를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초등학교 체육교과에서 놀이나 게임을 가르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 여기까지가 체육교육계에서 공유된 관점이다.
한편, 초등학교 체육교육에서 놀이와 스포츠, 이 양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를 하나의 실패라고 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즉, 특별한 교육적 의미가 없어보이는 레크레이션 활동을 가르친다거나 초등학생 발달 단계에 적합해보이지 않는 스포츠를 가르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꼭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이것은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체육교육 선진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것들이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스포츠보다 한 단계를 낮춰 게임을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게임의 수준으로 체육교과를 가르치는 것이 적합하다는 체육교육계의 일반적인 입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게임이라는 것을 놀이와 스포츠의 중간으로서 가르치는 것이며, 체육교과가 반드시 스포츠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앞서 그림으로 설명한 내용들은 결국 놀이의 진화된 형태가 스포츠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 체육교과를 가르치는 목적은 장차 스포츠를 향유하는 것을 가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스포츠는 과연 보통교육의 주제로 적합한가?
이 논의에 따르면 체육교과는 체육인들의 정수인 스포츠를 익히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다. 이것을 다른 교과로 돌리면 수학교과는 수학자의 정수를, 과학교과는 과학자의 정수를, 역사교과는 역사가의 정수를 따르는 것이 최고의 선(善)이다. 초등교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우리는 과학자나 수학자, 역사가, 그리고 체육인을 기르기 위해 교과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 경험을 표상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통교육으로서 가르치기 위해 교과를 가르친다. 그러한 의미에서 초등학교의 체육 교과는 인간의 움직임과 관련된 문화를 경험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의도(의미)를 움직임으로 표출하는 것을 주된 주제로 삼아야 한다.
공교육을 마치고 나서 수학자나 과학자, 역사가, 체육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만약 교과의 정수를 가르치는 것, 다시 말해 해당 교과의 모학문(母學文)의 정수를 가르치는 것이 교과의 목적이라면, 그 교육을 통해 수학자나 과학자, 역사가, 체육인을 길러내지 못하는 공교육은 실패한 것인가? 전혀 아니다. 어떤 삶을 살건 인간은 자신의 의미를 숫자로 표현하거나 과학적 방식으로 검증하거나 역사적 사건에 견주어 사색하기도 하고, 몸짓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요점은 체육 교과의 목적이 온전한 스포츠퍼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인 '움직임'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익히게 하기 위해 스포츠를 포함한 다양한 신체활동 문화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장의 초등학교 체육교과 운영 실태를 보면 속이 매우 쓰리다. 한 쪽에서는 놀이를 가르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스포츠를 가르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더 우울한 것은 현장교사이면서 체육교육을 연구하는 일부 연구자들이 초등학생들에게 놀이나 스포츠를 가르치면서 그것이 마치 체육교과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는 식의 오류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체육수업시간에 고학년 학생들에게 술래잡기를 특별한 이유 없이 가르치는 것이나, 학생들의 몸에 맞지 않는 전통적인 스포츠를 가르치는 것에 가뜩이나 부족한 체육 수업시수를 할애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가 보기에 놀이체육은 초등교사들의 전문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해행위이며, 전통 스포츠로 대체되는 수업은 스포츠퍼슨들의 자기만족의 발로(發露)라고 본다. 그 중 교육과정과 무관한 놀이를 체육수업 시간에 5,6학년 학생들에게도 적용하겠다는 생각을 주위에 퍼트리는 것은 본인의 의도가 어찌되었건 체육교과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거나,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거나, 교육행정기관의 잘못된 결정에 부역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른 한 편으로 체육교과에서 학생들의 수준에 어려워 보이는 전통적 스포츠를 가르치기 위해 특정 종목을 가르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교사들은 학교스포츠클럽과 체육교과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고,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무엇이라도 개발하고 나누는 것은 숭고한 희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절의 흐름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 멈춰서서 지나온 길이 틀리지 않았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네 체육관의 어린 사범들이나 레크레이션 강사들이 다수의 초등교사들보다 훨씬 더 아이들을 기쁘게 할 수 있으며, 전문적인 스포츠의 기술과 전략은 체육전공자나 은퇴한 스포츠 선수들이 더 잘 가르칠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체육이라면 굳이 해마다 호봉을 가산해 높은 급여를 주어가며 초등교사들에게 체육교과를 가르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고민을 모든 초등교사가 짊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초등교사는 체육 말고도 신경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지역의 교과연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내가 유튜브와 같은 매체를 통해 초등체육컨텐츠를 소개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체육교육학을 박사까지 공부를 했다면, 그래서 이러한 이유들로 만나고 있거나 만나본 적도 없는 수 많은 초등교사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체육교과를 교과답게 만드는 것인지, 체육교과는 어떠한 근거로 수많은 교과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다른 교과후보자들의 요구를 저지하고 교과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초등학교 체육수업은 어째서 체육 전공자들이 아닌 초등교사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나름의 답을 오랜 시간을 들여 정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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