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한선생의 체육잡설에 달린 댓글이나 인디스쿨에 올라온 글들, 연수 중에 선생님들이 질문했던 것들 가운데 자주 언급되는 것이 있다. '체육수업이 뜻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수업이 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좀더 구체화한다면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놀기를 바라며, 활동 중에 다투고, 어떤 아이들은 의욕이 없는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러한 '교사 의도를 벗어난 수업'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원인 역시 복잡한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엉망인 수업이 주는 심상은 아마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 출처: http://www.cwlp.com/
나 스스로도 얼마전까지 선생님들의 '체육수업이 뜻대로 안된다'는 문제에 적절한 답을 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수업이 엉망이 될 정도로 '뜻대로 안 된' 뚜렷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엉망이 되지 않았다는 나의 경험은 많이 가르치고자 욕심을 내지 않는 수업이나 일상적인 루틴을 포함하는 수업의 이야기로 한정한다. 어쨌든, 나는 내게 체육수업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의 해결방법에 대해 물어보는 다른 선생님들의 물음에 잘 답하지 못했고, 그런 문제가 체육수업에 발생하는 것 자체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오랜 고민끝에 이 문제의 해법이 '직접적인 대처'에 있지 않는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직접적인 대처란 문제가 발생했을 시점에 내놓음으로써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묘수라는 뜻이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체육수업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유형의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한 이유가 '뭔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력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에서야 정리된 나의 풀이 방식은 약간은 간접적이고 은밀하며 지속적인 방법으로, 학생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1. '체육수업=노는 시간'이라는 등식을 깨라.
아이들의 체육수업에 대한 기대를 변화시켜야 한다. 많은 아이들은 체육수업 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가 노는 것을 기대한다. 이런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좋아 하는 까닭은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체육 시간을 노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체육 수업은 엉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인식 아래서는 피구나 축구대신 교육과정에 적합한 수업을 하는 것에 지루함을 느낄 것이며, 교사의 설명이나 지시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은 놀고 싶은데 교사가 설명을 하니 지루할 수 밖에 없고, 흙장난을 하거나 옆에 있는 친구와 장난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것이다. 교사는 더 큰 목소리로 말해야 할 것이며, 앞서 설명했던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학생들 때문에 몇 차례나 했던 말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2. 체육수업에서의 게임이 정식의 경기가 아님을 인지시켜라.
아이들의 잘못된 인식 중 또다른 하나는 체육수업 시간에 하는 게임을 승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체육수업에서의 수많은 갈등은 게임에서 이기려고 하는 '호승심(好勝心)이 지나치기 때문에 나타난다. 지나친 승부욕은 여러가지 문제를 부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친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심의 결여는 신체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이나 신체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에 대해 적대감을 포함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진다. 심한 경우 동료를 게임의 방해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 친구를 배려하지 않는다: 기능 부족 등의 이유로 신체활동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격려나 위로를 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을 참여를 독려하고 학습경험을 증진시키기 위해 규칙을 바꾸는 일에 매우 인색하며, 그런 교사의 시도가 불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소외가 발생한다: 속된 표현으로 '하는 놈'들만 한다. 이기기 위한 게임을 하다보니 잘 하는 아이들끼리만 교류한다. 축구를 예로 들자면 잘하는 두 세명이 대부분의 시간동안 공을 점유하고, 축구를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공을 패스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사실 매우 심각한 현상인데, 여학생들의 체육수업 참여율이 떨어지는 것이나 학급 전체의 학습 경험 감소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수업의 목적은 대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에 있다. 체육수업의 경쟁은 배움의 도구일 뿐이다.
사진 출처: http://www.modernmom.com
3. '체육수업은 배우는 시간'이라는 전제를 아이들에게 이해시켜라
체육수업의 목적은 노는 것도 아니고 게임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라, 전적으로 배우는 것에 있다. 또한 배움이라는 것은 '나'만의 배움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배움까지도 포함된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학습경험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학습경험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학습에 대한 좀더 폭넓은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체육수업의 목적이 배움에 있다면 아이들에게 익숙한 피구나 축구가 아니라 좀더 단순한 과제(예컨대 던지기나 달리기, 뛰기 등)라고 하더라도 과제에 집중하게 된다. 체육수업에서의 학습 내용들이 신체활동이기 때문에 다른 교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집중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교사가 설명하거나 시범하는 부분, 개인적인 피드백에 대하여 집중해야 한다는 교사의 지시에 대한 설득력을 더한다.
배움이 목적이라는 전제는 체육수업 중의 많은 신체활동에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체육수업에서는 과제에 대한 집중력과 더 잘하려는 노력을 유인하기 위해 '경쟁'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체육수업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는 신체활동들의 경쟁 요소를 '경기'로 착각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착각은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 신체활동의 경쟁은 배움을 촉진하는 '수단'일 뿐이다. 체육수업에서는 이기면 기분이 좋겠지만 져도 '비분강개'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체육수업 경쟁 상황은 대회나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쟁이 경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 체육수업에 시사하는 점과 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해야할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고 별도의 글을 통해 다루겠다.
많은 교사들이 바로 익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인스턴트 자료 내지 원포인트 레슨, 즉시적인 효과가 있는 방법을 원하는 상황에서 내 수업방식이 매력없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업을 장기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학습 분위기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아이들이 수업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살피고 잘못된 인식은 바로잡을 수 있도록 방향을 안내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지침은 하루 아침에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도전해햐 하는 체육수업에 대한 낡은 인식들은 수많은 수업을 통해 고착된 것이고,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전반적 분위기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지침들은 장기간에 걸쳐 아이들에게 설득시켜야 할 것이고, 특히 낡은 인식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시간적으로는 수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의 해법이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학년말에 변화를 보일 것이며, 내년에는 한층 성숙한 태도로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다른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모습 속에서 관찰할 수 밖에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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