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숨을 돌릴 틈도 없을 만큼 바쁜터라 블로그를 거의 방치하고 있습니다. 근자에 제가 사랑하는 교단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제 주변에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랍시고 교사를 절벽 밑으로 내모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고민해왔지만 말끔하지 않았던 생각을 이 글을 통해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공교육의 수요자는 학생과 학부모가 아니라 사회이다.
학교는 개인인 학생이나 학부모의 개별적인 취향을 맞추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을 만드는 곳이다.
현대 교육체제의 기틀이 마련된 이후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공교육은 철저하게 국가주도로 이루어져 왔다. 교육 내용과 방법은 국가(의 지시를 따르는 학교와 학교의 지시를 따르는 교사)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교육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국가가 요구하는 지식이나 기능을 갖추게 하는 데 있었다. 이 시기의 교육은 그야말로 국가의 요구에 따라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탈권위주의의 유행과 국가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에 국가주도 교육의 폐쇄성과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더해지며 1990년대 중반부터 교육 개혁이 이루어졌다.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가 보고한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 1998년 교육부가 제시한 ‘창조적 지식기반 국가건설을 위한 교육발전 5개년 계획’은 이전의 교육을 ‘공급자 중심의 교육’으로, 앞으로의 교육을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대립시켰다. 2010년대 이후 학교현장과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은 이때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교육에서 수요자를 강조함에 따라 ‘손님은 왕이고 주인은 머슴’이라는 자유시장주의의 경구가 학교에 이식되었다. 바야흐로, 학부모(학생)은 왕이고 교사는 머슴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수요자중심 교육의 본질은 ‘학생이나 부모의 주문을 따르는 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학생 중심교육이나 아동 중심교육을 표현하는 다른 용어로, 학습자의 필요를 전문적으로 검토하여 파악하고 충족시키는 교육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사용된 용어이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각자가 타고난 다양한 유형의 재능을 발굴하고 길러주는 것이 그 본뜻이리라.
그러나 늘 워딩을 표면적이고 일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때 문제가 된다. 교육의 문제에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실제 교육을 하지 않는 교육행정관료, 그리고 심지어 교사출신의 행정가들 조차)이 교육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상품 및 서비스를 수요에 따라 공급하는 시장 경제적 관점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시장 경제에서 좋은 상품과 서비스는 소비자의 욕구를 주관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문제에서 공급자는 누구인가? 공급자의 위치에 간단히 국가나 학교, 교사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가-학교-교사에 대응하는 소비자는 누구인가? 우리 사회는 충분한 숙고 없이 이 대응쌍의 지점에 학생과 학생의 법적 보호자인 학부모를 놓았다.
학생과 학부모를 수요자로 두는 것 자체가 아주 엉터리의 발상은 아니다. 확실히 공교육에서 학습하는 대상은 학생이며, 학부모는 학생의 주된 양육자로서 국가와 더불어 학생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교육할 의무가 있는 양대 주체이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를 수요자로 두는것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시장경제에서 서비스가 우수한지 판단하는 것은 실제 서비스의 질이 아니라 고객의 주관적인 만족도이다. 좋은 교육이 주관적 판단으로 인해 나쁜 교육으로 간주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다수의 판단이 된다면 나쁜 교육이 정상적인 교육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간주되는 사회의 끝은 절망과 파국뿐일 것이다.
공교육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기대하는 것과 각 가정에서 기대하는 것은 서로 다를 것이다. 대체로 각 가정에서는 공교육에서 자신의 자녀가 경쟁에서 승리하길 바랄 것이다. 이때, 만족할 만한 공교육이란 좋은 대학의 좋은 학과를 가고 좋은 직업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우리 아이의 승리하는 매일을 위해 기죽지 않고 학교 생활을 하는 것 등 시시콜콜하면서 다양한 간접적 요구가 포함될 것이다) 반면에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입장에서는 누가 대학을 잘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는 중요하지 않다. 자녀의 부모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그 아이가 칼부림을 하는 미치광이가 안 되기를, 타인의 약점을 잡고 갑질하는 사람이 안 되기를,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떳떳한 사람이 안 되기를 바란다. 즉, 사회는 공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다하고,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기대한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은, 사실 공교육의 수요자가 누구인지 두는 데에서부터 잘못되었다.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공교육은 매우 공적인 과정이라 그 안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사적으로 자아를 실현하지만, 그 결과는 학생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게 돌아간다. 그런 점에서 공교육의 혜택을 받는 대상은 단지 학생이나 학부모, 기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구성원 전체이다. 즉, 교육의 수요자는 학생, 학부모, 그리고 기업이 아니라 ‘사회’이다. 공교육은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사회가 지속하고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교육의 목적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정상적인 시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는 그저 좋은 직업이 보장된 학과에 입학할 수 있게 하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학생이 저지를 수 있는 크고 작은 잘못을 묵인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잘못이라도 단호하게 가르치고, 자신의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학생에게 자신의 문제를 뼈저리도록 체감하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부당한 직위해제와 담임교체, 학부모 갑질,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고소 남발과 같은 이 끔찍한 일들은 수요자 중심 교육에 대한 잘못된 메타포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교육을 경제의 논리로 파악하고 취급하는 사람들이나 일부 그러한 논리에 가스라이팅된 가련한 교육 관계자들의 십수년간 반복된 헛발질이 학교를 망치고 있다. 학교에게 아이나 학부모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요구를 단지 ‘고객님’의 요구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감수하게 하여 얻은 결과가 무엇인가? 묻지마 범죄나 막무가내식 갑질, (비아냥대는 말로 쓰는) MZ 이상으로 더 좋은 결과가 산출되었는가?
세금을 낸 납세자이니 그에 맞게 서비스를 요구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세금은 부모 말고도 수 많은 사람이 낸다. 공교육에 대해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납세자로 축소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한 학생에게 바라는 것은 공감능력이 결핍된 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속성이 있는 공교육의 목적은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교사가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섬세하게 개입하는 것은 이러한 공교육의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학급의 교육이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지극히 개인적인 편의나 취향에 휘둘려 방해받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간섭은 오히려 교사가 학생들을 나쁜 것들을 미워하고 좋은 것을 선망하도록 만드는 것을 방해한다. 교사가 자신의 정당한 교육 행위를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여러 사회문제를 조기에 예방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 공동체 질서가 무너져 사회의 성장은커녕 개인의 기본적인 안전도 보장받기 어렵다는 두려움이 만연한 요즘, 교육 수요자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학교의 상급기관의 지침이나 일부 수요자=학부모라는 발생에 세뇌된 기관장들이 수요자 중심 마인드로 일을 처리하는 것에 부당함을 느끼거나 분개하는 교사들이 많다. 교실의 수업은 외부의 일이 끼어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미묘하고 복잡한 현상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수요자 중심 교육, 이따위 말을 부디 함부로 꺼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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