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한선생] 초학문주제, 개념기반교육과정, IB교육에 대한 우려
이번 여름에 경기도교육청 1정 연수과정에서 깊이있는 수업과 평가를 위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마 별일 없다면 예정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연수 원고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데, 자료를 분석하지만 당장 슬라이드를 제작해야 하는 판에 손이 좀처럼 가지 않습니다. 교과교육연구자로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꺼림칙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지점들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포스팅을 남깁니다. IB 광풍 속에서 교과교육연구자로서 한마디 하려고요.
통합적 교육은 분과적 교육을 통해 학습한 것이 현실의 복잡하고 가변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원되기 어렵다며 최근 크게 강조되고 있다. 개념기반교육과정이나 IB 교육과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교과교육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주장이 일면 타당하면서도 꺼림칙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삶과 교과의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들이 이를 주장하기 위해 전통적 교과교육을 부정하는 방식이나 교육과정 설계를 획일화하려는 듯한 시도가 매우 우려스럽다. 이에 본 글에서는 교과교육의 측면에서 통합주의자들의 허수아비 때리기와 전체주의적 성향을 꼬집으려고 한다.
각 교과에서 배우는 지식과 과정(이 글에서는 개념기반교육과정 지지자들이 이야기하는 ‘지식의 구조’와 ‘과정의 구조’ 모형에 맞춰 기능이나 전략, 형식 등을 ‘과정’이라고 표현하겠다.)은 다양한 맥락에서 적용될 것을 가정하며 이에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맥락을 제시한다. 가령 설명하는 글의 구성과 쓰는 방법에 대한 단원에서는 그 글감으로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문화예술 등 다양한 맥락의 배경에서 설명하는 글의 구성과 쓰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교과는 삶과의 연계를 강조하며, 다양한 맥락에서 교과의 지식과 과정이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즉, 다양한 맥락을 통해 일반화된 지식과 과정을 가르침으로써 배운 내용이 학습자가 처할 각양각색의 상황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념기반교육과정이나 IB 교육과정 지지자들은 교과의 내용이 탈 맥락적이어서 실제의 복잡한 상황에 충분히 적용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이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이다. 교과의 지식과 과정을 가변적이고 비정형적인 상황에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교과가 가르쳐지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지식과 과정을 통합적으로 적용한 결과를 평가하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평가자들은 자신들의 기준이 객관적이거나 간주관적임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권력이나 권한을 쥐고 있는 그들이 개인이 산출한 지식과 과정의 통합적인 결과물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 허용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 평가자의 입맛(취향)에 맞지 않아서 탈락될 수 있는 경우나 2) 평가 결과를 통해 경쟁하는 상황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의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경우가 흔한 경우, 평가를 받는 개인은 일반적인 범위 내에서 결과물을 산출하는 선택을 피하기 어렵다. 튀지 않는 선택을 강요받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매우 흔하게 겪는 것이며, 심지어 각 분야의 최첨단에 있는 전문가들도 이러한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삶을 반복할텐데,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심각한 문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하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다.
물론, 개념기반교육과정이나 IB 교육과정 지지자들의 말대로,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 기존의 문제가 아닌 실생활 맥락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학교에서 단원 수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일리가 있고,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과의 전형적인 탐구 방법이나 현상의 해석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수준에서 사용되는 비학문적인(통속적인) 내용과 수단을 함께 사용하는 것의 중요하다는 것도 매우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기존의 교과에서 강조하는 전형적인 지식과 과정에 대한 학습 토대 없이는 어려운 것이다. 통합주의자들은 때때로 ‘분과적’이라는 개념에 경멸과 조소의 뉘앙스를 담 사용하지만, 분과적 교과를 체계적인 방법으로 학습하지 않고는 통합에 사용할 기초적인 수단을 갖추게 할 수 없다. 교과의 연계에서 다양한 교과가 동시에 전경이 될 수도 있지만(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한 문제해결), 한 교과가 전경이 되면 다른 교과는 배경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 또한 존재한다(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국어, 미술, 음악 등의 표상을 활용하는 경우).
*그런 점에서 경기도교육청의 깊이 있는 수업 프레임워크에서 ‘연결 활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래 프레임워크의 하단을 살펴보시라. 비록 초학문적주제를 앞세우고 있으나 사회교과에 충실하며, 배경(도구)이 되는 교과를 병렬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사회에서는 통합되어 능력을 사용하게 하고 있지만 해당 교과에서 해당 성취기준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즉, 교과가 연계되지만, 타교과의 성취기준을 뭉개버리는 무지성 통합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되는 교과에서 자칫 배경(도구)이 되는 교과의 학습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어설픈 통합은 심각한 학습 결손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2024년 경기도교육청이 대구교육대학교 산학협력단(임유나 교수 등)이 수탁과제로 수행한 《경기도형 개념기반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초등 초학문주제 도출 연구》에서는 ‘인류 문명과 역사적 발전’이라는 초학문주제를 가르치기 위해 아래의 성취기준을 동원한다.
[6사02-02] 우리나라의 지역별 인구 분포의 특징을 알아보고, 이에 따른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탐색한다.
[6국03-01] 알맞은 내용을 선정하여 대상의 특성이 나타나게 설명하는 글을 쓴다.
[6국03-04] 독자와 매체를 고려하여 내용을 생성하고 표현하며 글을 쓴다.
[6미02-04] 주제 표현에 의지를 갖고 표현 과정을 돌아보며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다.
[6미02-05] 미술과 타 교과의 내용과 방법을 융합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아래 내용을 통해 초학문주제로 수업을 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살펴보자.
그러나 아래 그림으로 제시 단원 설계의 탐구 활동(차시별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의 성취기준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며, 국어와 미술의 성취기준에 대한 지식이나 과정은 거의 가르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통합에서는 국어와 미술의 성취기준을 배울 수업시수를 사회 중심의 초학문주제에 할당함으로써 국어와 미술에서 해당 성취기준을 가르치는데 사용할 시수를 가로채 부실한 수업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즉, 성취기준 [6국03-01], [6국03-04], [6미02-04], [6미02-05]에 대한 지식과 과정은 사회교과의 주제라는 한정된 맥락 안에서 보조적으로 다루어짐으로써 ‘인류 문명과 역사적 발전’이라는 맥락 이외의 다른 맥락의 문제에 전이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는 전이를 추구한다면서 오히려 전이를 막는 셈이요, 통합을 강조하다가 어느하나 똑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모순으로 들어서는 셈이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교과의 연계를 가정한 단원 설계가 ‘연계’ 혹은 ‘연결’이 아닌 ‘통합’ 수준으로 적용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며, 따라서 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거나, 전체 교육과정에서 지나치게 큰 비중으로 할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교사교육(대학이나 대학원 강의, 각종 연수)에서 마치 개념기반교육과정이나 IB교육과정에서 사용하는 프레임워크가 요술방망이처럼 모든 곳에 적용되는 만능이자, 모든 교육 상황에서 언제나 옳은 정의로 암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어쩌다보니 개념기반교육과정, IB교육과정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몇 개나 씁니다(https://betterthanever123.tistory.com/286).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마음이 그러한걸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