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썼던 논문을 토대로, 2024 제7회 유초특 수석교사와 함께하는 수업 페스티벌의 자료집 <수업을 말하다>에 기고했습니다. 이곳 블로그에도 원고를 다섯 조각으로 나누어 포스팅합니다(긴 글을 읽기 부담스러워 하시는데...조삼모사 같긴 합니다만, 나눠 올려봅니다). 놀이가 만능양념장으로 쓰이는 최근의 트렌드에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길 바라며 독자분들에게 공유합니다.
《 글 순서 》
1. 들어가며
2. 놀이를 깊게 보기
3. 놀이의 교육적 가치 톺아보기
4. 교육의 놀이화가 가진 한계점
5. 맺으며: 교육에 놀이를 더하기 위한 적합한 방안
2. 놀이를 깊게 보기
가. 유희와 진지의 양면성
놀이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활동이다. 역사학자 후이징가는 이를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인간의 본성을 유희로 파악했다. 그는 놀이 정신이 철학, 예술, 전쟁, 법률 등 인류 문명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문화가 놀이의 형태로 발생하며, 비록 문화에 놀이적 성격이 눈에 띄지 않더라고 심층에는 놀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보았다.
놀이가 문화를 창조하는 힘을 가졌다는 주장이 놀랍지만, 기본적으로 놀이는 일상생활 밖에서 벌어지는 진지하지 않은 활동으로 설명된다. 후이징가에 따르면 놀이는 실제 삶과 격리된 시공간의 놀이터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수행되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물질적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지만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이 깊은 몰입을 체험하게 한다. 사회학자인 카이와 역시 놀이를 자유로운 활동, 분리된 활동, 확정되어 있지 않은 활동, 비생산적인 활동, 규칙이 있는 활동, 허구적인 활동으로 정의하며, 일상적인 경험과 다른 것임을 주장하였다.
종합하면, 놀이는 생계의 유지나 생존을 위한 활동과 거리가 먼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일상적이지 않다. 놀이에 문화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실생활의 문제와 관련이 없는 것이다. 즉, 논다는 것의 본질은 무언가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가 아니라 놀음으로써 정서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그런 점에서 놀이는 유희적 활동으로 볼 수 있다.
놀이의 유희성은 놀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성질이다. 그에 비해 놀이가 진지하다는 것은 우리를 잠깐이나마 생각에 잠기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유희적인 것과 진지한 것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놀이의 진지함은 그 안에 존재한다. 현상학자 가다머에 따르면 놀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놀이는 전혀 진지하지 않지만, 놀이 자체는 신성한 진지함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놀이를 가벼운 유희로 간주하더라도 일단 놀이에 참여하면 매우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놀이가 끝나면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안다. 만약 여러 명이 놀이하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 혼자서만 놀이에 완전하게 빠져들지 않으면 그 놀이는 망친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놀이는 실제의 삶과 떨어져 있지만 매우 진지한 몰입을 전제로 한다.
한편, 교육학자 디어든은 진지함을 객관적 진지함(objectively serious)과 가장된 진지함(pretended serious)으로 나누어 보고, 놀이에서의 진지함을 가장된 진지함으로 분류했다. 그에 따르면 아동의 교육은 놀이에서 서서히 벗어나 진지한 것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관점에는 가장된 진지함을 요구하는 놀이가 교육 방법으로는 한계를 가진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에 비해 듀이는 일과 놀이에 공통적인 정신작용이 있다고 보아 놀이를 교육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보았다. 듀이에 따르면, 놀이는 목적과 진지함이 있어서 참여자의 몰입을 끌어내므로 놀이와 놀이가 아닌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 더 큰 주의력과 지능이 요구되면 그것을 일반적으로 일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놀이는 유희성과 진지성을 가졌다. 놀이의 양면성은 놀이와 놀이가 아닌 것(일이나 교육)을 나누어 보려는 상식과 부딪힌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교육사상가 프레네는 놀이와 일의 중첩된 지점이 있고, 그로 인해 일 자체가 놀이가 될 수 있고, 놀이 형식으로 일을 배울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발상은 일에 교육을 치환함으로써 교육이 놀이가 될 수 있고 놀이가 교육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게 한다.
나. 놀이의 규칙과 유형
규칙은 놀이를 구성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후이징가는 규칙을 놀이가 펼쳐지는 곳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놀이의 규칙은 참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의 의심도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진다. 카이와 역시 놀이가 자의적이지만 명확하고 거부할 수 없는 규칙에 따른다고 보았다. 그는 규칙을 파괴하는 자는 놀기를 거부하는 ‘부정자’로 설명한다.
카이와에 따르면 놀이의 규칙은 양 극점에 있는 두 가지 성질(파이디아와 루두스)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파이디아(Paidia)란 통제되지 않는 일시적인 기분이 표출되는 무질서하고 변덕스러운 성질이며, 루두스(Ludus)란 바라는 결과에 도달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한 불편한 약속이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루두스는 파이디아를 조절하고 구속한다. 놀이의 규칙은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러한 발산이 일정한 틀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약이 공존하게 한다.
한편, 놀이는 몇 가지 유형을 가진다. 후이징가는 놀이의 특징 중 경쟁과 모의(역할극과 같이 세상의 특정 현상을 따라하는 놀이)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카이와는 이런 두 측면에 더해 운과 현기증을 또 다른 특징으로 꼽고 있다. 카이와는 이러한 특징으로부터 놀이의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 아곤: 참여자의 자질을 활용해 상대와 경쟁하는 놀이. 개인의 능력(체력, 재주, 솜씨 등)을 제외한 모든 조건(화살의 수, 시도할 수 있는 횟수 등)을 동일하게 하여 겨룸.
■ 알레아: 라틴어로 주사위 놀이를 의미. 놀이하는 자의 능력과 무관하게 운(운명)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놀이.
■ 미미크리: 흉내와 모방에 의한 놀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자신이 다른 존재라고 믿게 하며 노는 것과, 그러한 연기를 현실보다 더 실제적인 것으로 믿고 몸을 맡기고 노는 것을 포함.
■ 일링크스: 놀이기구와 같은 현기증을 일으키는 놀이. 지각의 안정적 상태를 파괴하여 기분 좋은 패닉을 일으키는 것으로, 가슴졸임이나 흥분, 얼떨떨한 상태를 유발함.
이러한 놀이에 대한 고찰은 교육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육에 놀이를 적용하는 상황에서 경쟁과 모방이라는 요소를 활용한다면 단순히 유희를 넘어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또한, 놀이의 규칙의 파이디아적 요소와 루두스적 요소는 교사가 개발한 과제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출(파이디아)하는 것과 그것을 학습 목표에 따라 조절(루두스)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놀이와 교육이 형식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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